또다시 1212를 맞이하였다.
미완의 역사다.
언제 정리가 될지 요원하다.
주역이던 연희동 어르신은 정처 없이 떠돈다.
영혼은 어디에 정착했는지 모르지만 육신은 한 줌의 재가 되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별 두 개 달고 근무하던 파주 지역에서 방황한다.
구국인지 반역인지 아직도 논쟁 중이던 그날이 서울이 겨울이 오늘 서울의 봄으로 돌아와 며칠 만에 수백만 명이 찾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얄궂은 운명이자 기구한 운명의 1212다.
미당 선생은 1212 몇 년 전에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 했다.
제대 후에 주경야독하다가 지쳐 불공장에 입사하여 낙향하여 또다시 조국과 민족과 가족과 자신을 위해 불철주야 뛰다가 다시 정년퇴직했다.
종(鍾)의 종(終)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계속해서 이어져 울었다.
재취업하여 두루두루 좋고 즐겁게 나날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연식이 좀 돼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정도면 웬만큼 밥값은 하고 있으니 불러주고 써 주기만 한다면 스스로 끝맺음 종을 치고 싶진 않다.
생명수당을 받으며 산악 구보와 행군하던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못 할 일이 없다.
의지의 한국인 불굴의 전력인으로 남고 싶은데 언제까지 어느 수준으로 남겨질지는 모를 일이니 그저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오늘은 생명수당을 상기해본다.
세상 좋아지고, 군대 좋아졌다.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누군가에게 그렇다.
군의 변화가 이채롭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정되고 시행되는 것이니 좋은 제도일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라떼 시대들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 참 별일이라는 말만 나올 수도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어떤 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겠지만 경험과 현실과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몇 년만 있으면 일반 병사가 2년여를 근무하고 나올 때 2천만 원의 목돈을 갖고 나올 수 있단다.
생명수당이 초라하고 부끄럽다.
3년여 군 생활에 1년 넘게 수색대원으로 근무하다가 생명수당 적금 3만 원인가 5만 원인가를 받아서 나오다가 의정부에서 제대 동기들과 한 판 때려먹고 끝났던 세대와는 격세지감이 크다.
생명수당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나무 위키에 A4 용지 9장 정도 분량으로 자세하게 설명돼 있었다.
옛날 생각을 하며 자세히 읽어보노라니 “맞아, 그때 그랬었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밥을 얻어먹어야 할 청년에게 잘해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울러 무임 승차라도 하며 최소한의 생활을 하고자 하는 노인에게 박절하게 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동행(同行)의 그림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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