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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라면한테 속았다

by Aphraates 2023. 12. 13.

라면 때문이다.

라면은 별 문제가 없고 본인의 문제인데 괜한 트집을 잡는다.

구차하고 치사한 모습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나는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허풍을 떤다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이 아닌가.

 

치과, 구역회, 초등 동창회, 구청 행정, PC 자료정리......, 해야 할 일들이 있어 꼭 대전 집에 가야 하는 지난 금요일이었다.

늦은 시간에 장거리 운전을 하려면 전일인 목요일은 업무상으로는 바쁠지라도 개인적으로는 좀 조용히 지냈다가 휘파람 불며 운행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공과 사를 구별하기가 애매모호한 것도 있고, 분명 사적인 일인데 공적인 일로 둔갑시켜 일을 만드는 예도 있다.

안 해도 될 일을 해가면서 피로를 누적시키는 것이다.

 

남은 일을 동료분들께 부탁하고 오후 대전 길에 나섰다.

적치해놓은 대체 휴무일에서 반만 써서 이른바 반차를 사용한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 싫어 머리 아프다고 핑계 대는 것 같아 미안했다.

 

심신이 온전칠 않았다.

전날에 근 1년간 동고동락하시던 김 상무님의 울산(蔚山)행을 내부적으로 최종 결정짓고 서운한 감이 들어 함께 저녁을 했다.

소맥 폭탄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여 한 바탕 벌이고 난 후유증이 그 이튿날로 이어졌다.

 

평소에 간단히 먹던 아침도 걸렀다.

몇 가지 일을 바쁘게 처리하다 보니 속이 쓰리면서도 허했다.

차 안에서 간식 겸 주식으로 먹는 김밥, 오이. 사과, 만두만으로는 속이 뻥 안 뚫릴 것 같아 호남선 벌곡 휴게소에 들렸다.

얼마 안 가면 집인데 속을 채우려는 것은 도착하자마자 치과에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휴게소 메뉴를 기대는 안 했다.

휴게소에 들려 먹는 재미가 쏠쏠하던 때는 벌써 지난 터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들렸는데 역시나였다.

메뉴판을 보니 그저 그랬고, 구미에 당길만한 것도 없었다.

가성비가 떨어진 음식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달라지는 입맛이 변덕스러운 것이었다.

 

둘이서 물끄러미 메뉴판을 보다가 다른 사람들은 뭘 먹나 하고 훔쳐봤다.

라면과 밥이 함께 나오는 라면 정식을 드시는 손님들이 많았다.

밥에 라면 발을 얹어 한 입씩 먹거나 호호 불어가면서 국물을 마시는 그것이 맛있어 보였다.

우리도 저거 한 번 먹어볼까 하였더니 데보라도 콜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라면 상을 받았다.

기도를 하고 한 젓가락 먹어봤다.

바로 이 맛이야.” 하는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다 그렇고 그러네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밋밋했다.

저쪽 사람들은 라면 몇 개 정도는 거뜬하다는 식으로 맛있게도 먹는데 이쪽 두 사람은 그렇게 먹다가는 복 달아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라면 발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단무지만 엎었다 뒤집었다 했다.

 

결국은 반 정도 먹고는 식기를 반납하였다.

음료 대에서 물을 마시면서 서로가 얼굴을 마주 보고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에이 라면한테 속았네라고 하였더니 옆에서도 그렇다면서 덩달아 중얼거렸다.

라면은 여전하여 무죄다.

라면이 배신을 때린 것이 아니다.

변덕스러운 입맛과 피곤한 몸이 라면을 배신한 것이다.

공수 관계가 그러면 자기 입과 배를 때리는 것이 정상인데 반대로 라면을 때리니 자가당착과 적반하장이다.

그렇다고 가슴을 치며 반성하지는 않는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눈을 흘기는 우를 되풀이하지는 말자고 자성하는 것으로 속을 풀어내 본다.

 

그런데 오늘도 라면 탓을 하려다가 결이 다른 것이라 여기며 얼른 내렸다.

지리산과 방어는 잘 안 어울리는 조합인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식사로 매운탕 국물에 라면을 넣고 밥을 조금 말아 후룩룩 먹는데 입안이 이상했다.

뜨겁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돌아 앉아 몸을 구부리고 웬일인가 하고 혀로 입안을 훑어보니 끄트머리 이 하나가 적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떨어진 것을 꺼내 보니 잘 드는 칼로 베어낸 것처럼 날카로운 조각이었다.

혀가 찔려 출혈도 발생했다.

먹는 자리에서 일행들한테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어서 얼른 휴지를 접어 깨진 치아 부분을 지그시 눌렀다.

뭘 먹을 수는 없고, 말하는 것도 한쪽 입으로 우둔하게 하였다.

다른 때 같으면 2차도 가고, 2차가 끝나면 콧노래 불러가며 걸어서 도통동 집으로 갈 텐데 환자가 되었으니 그럴 순 없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어금니가 칼날 같은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혀를 조금만 움직여도 혀를 찔러 아팠다.

술김인데도 이렇게 아프니 아침에 일어나면 훨씬 더 아플 거라는 생각에 날카로운 부분을 손가락으로 밀어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렇다고 망치로 때릴 수도 없어서 발치한 후에 하듯이 가제를 말아 날카로운 부분을 가렸더니 불편하긴 하였지만 아프진 않았다.

 

내일 아침에 어찌할 건지 고민을 좀 해봤다.

하루라도 그냥 지내기는 어렵다.

어떤 식이든 치료해야 한다.

1안은 남원 치과에 가서 응급조치하는 것이다.

2안은 대전 치과 주치의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이다.

앞뒤를 재가며 고민하다가 대전에 가기로 하였다.

현장에 출근했다가 바로 대전에 가기로 하였다.

중상은 아니니 대전에 가서 응급조치하고 순서대로 조치하면 될 것이다.

 

라면한테 속았다.

라면 먹다가 이빨 부러졌다고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 순리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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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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