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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여기도 살아있네

by Aphraates 2024. 3. 3.

책을 놓은 지 좀 됐다.

남원 내려가고서부터이니 한 일 년 정도다.

책벌레는 아니어도 책을 좋아하는 학구파 스타일이 왜 그랬는지 뚜렷한 이유는 없다.

현장 일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적잖게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책을 놨다면 핑계다.

이유는 단 하나다.

잠시 맘이 없고, 절실함이 없었기에 일 년여를 허송세월한 것이다.

모토를 느슨히 하고 잠시 일탈한 셈이다.

 

각성해야겠다.

갑자기 맘이 변하면 변고가 생긴다고 했다.

연만한 나이에 현장을 뛰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에 뒤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늘 감사한다.

하나 안주는 금물이다.

그럴 여유와 역량이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평소 신념과도 맞지 않다.

언제 몸과 맘이 말을 안 듣고 일을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물론 그를 두려워하진 않는다.

그 때 일은 플러스든 마이너스든 그 때 가서 하면 된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즐겁든 괴롭든 오늘에 충실하면 된다는 신조가 있다.

위안도 좀 된다.

책을 놔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공부의 달인은 아니나 노느니 삽질은 하고 있다.

다른 일을 하면서 틈새를 노려 부담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나는 것은 없다.

 

마무리하지 못한 자격증이 있다.

그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지난주에 인터넷으로 원서를 접수했다.

시험일은 330일이다.

그 시험도 만만치 않은 시험이다.

짧은 시간에 어찌 하겠다는 것이냐며 천재가 아닌 바보가 아니냐고 말한다면 반박할 처지는 못 된다.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다.

노프러브럼이다.

막무가내로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게 아니다.

비장의 무기가 있다.

공학도로 어려운 과목이긴 하나 13 과목 중에 경영학 하나만 객관식으로 통과하면 2차 논술은 면제받고 3차 실무 면접만 보면 된다.

이 수험생이 예쁘거나 무슨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니라 기술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어 중복되는 분야를 제도적으로 면제시켜준다.

3차 면접은 실무 위주여서 비교적 수월하겠지만 1차 경영학은 만만찮다.

거기서 과락률이 40-60%가 된다.

경영학. 산업심리학, 산업위생 세 분야에서 5지 선다형 25문제로 출제되는 데 60점 이상인 15문제를 맞추기가 어렵다.

맹탕도 아닌 사람이 그 정도는 너끈히 풀어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용어조차도 생소한 그 과목에서 60점 이상을 받는 것은 그만한 노력과 실력이 담보되어야 가능하다.

 

또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지금 그를 취득해서 뭘 하려고 그 어려운 시험에 도전하느냐는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모험심을 발휘할 것도 아니다.

웬만한 것은 기술사 자격증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리는 게 있다.

시도했다가 중단한 것이 게림찍하다.

있어서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은 없기 때문에 쓰고 안 쓰고를 떠나 취득하려는 것이다.

생각과 시도가 자연스럽고 순수하니 욕심이 족제비라는 소리를 안 들었으면 한다.

 

연휴 동안에 10년 치 기출문제 250 문항을 풀이하며 해설을 숙독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경영학 교과서와 참고서도 펼쳐봤다.

또렷하진 않으나 감은 잡혔다.

소맥폭탄하고 밥 먹는 시간과 틈틈이 베란다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빼고는 밤낮으로 책상 앞에 앉아 PC와 더불어 공부하는 자세도 바로 나왔다.

평소 마시는 믹스가 아닌 알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쉬노라니 살아있네하는 하정우 배우의 대사가 떠올랐다.

나중 결과가 어떨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그런 자신감을 혼자 중얼거리는 것도 괜찮았다.

 

합격 여부를 떠나 동구 자양동 시험장에 가서 가벼운 맘으로 1교시 시험을 치를 수 있을 것 같다.

좀 걸리는 것도 있다.

손자 손녀뻘 되는 수험생들과 아들딸 뻘 되는 시험 감독관께서 불편해하시지 나 않을까, 지인을 만나면 왜 그러고 다니냐고 핀잔하지 않을까, 혹시 언론사 취재라도 나와 최고령자 수험생이라고 한 말씀 부탁한다고 하면 어떻게 거절하고 튈까 하는 게 좀 겸연쩍기는 할 것 같다.

 

3.1절 다음 날에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은 것이 남아있는 이웃나라 일본어를 쓰는 것이 좀 그렇지만 오사마리(おさまり, 결말)를 지어야겠다.

1년에 한 번 뿐인 시험인지라 부족해서 올 해 안 되면 내년에라도 끝을 봐야지 안 그러면 뭐 하고 뭐 않을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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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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