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이 아니다.
그 때는 서울 올림픽이 있던 해로 우리 위상이 한층 높아질 때다.
말하라 1971이다.
그 때는 유신시대이자 개발도상국으로 발도움할 때다.
미당 선생의 문화동 학교 시절이다.
대고 오거리를 지나면 테미 고개 아래부터 충남대학교 앞과 병참학교 옆을 지나는 도로는 버스 한 대만 지나가면 먼지가 뽀얗게 일던 비포장 길이었다.
문화동 보문산 아래와 산성동 논가에는 초가집들이 제법 있었고, 거기에 버스 종점도 있었다.
비만 조금 오면 푹푹 빠지는 황토 수렁이어서 물바다인 유천동이나 태평동이나 도마동만도 못 했다.
반 세기 전을 이야기해서 뭣 하겠는가만 가난이 지긋지긋하면서도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뭔지 모르겠으나 싫진 않다.
https://youtu.be/IxpNGPNtBJo?si=IsvoKoiMPTVI1K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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