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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케이스 갈이

by Aphraates 2025. 5. 11.

중학교 시절 시계를 처음 찼을 때였다.

시간이 맞는지 안 맞는 지는 따질 것도 없다.

째깍거리고 가기만 해도 다행인 고물짜 수준의 시계를 처음으로 찼다.

얼마나 오래 됐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시계 판이 노랗게 변했었다.

완전 구닥다리였다.

농담으로 말할 거 같으면 만주에서 개장사할 때 찼던 시계가 아니었나 할 정도로 낡은 시계였다.

그나마도 선택받은 행운아였다.

청양이나 공주에서 시계를 찬 중학생은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세월이 병이었다.

처음에는 그 정도의 시계라도 황공무지였다.

그러던 것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쾌쾌 묵은 시계가 싫어졌다.

번쩍 번쩍 빛나는 새 시계를 차고 싶었다.

하지만 사달라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갈수록 누런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게 창피했다.

차라라 안 차고 다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런 답답함을 해소시켜주는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게 바로 시계 케이스 갈이다.

속은 골골하는 옛것일지라도 새로운 디자인의 케이스로 갈면 겉보기에 새로 산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용돈을 아껴 보태고, 아버지를 졸라 동네 박()씨 아저씨네 시계포로 가서 시계 케이스 갈이를 했다.

기분 짱이었다.

맘에 쏙 드는 것은 아니었으니 자랑할 만했다.

친구들한테 나는 이런 시계가 있다 하고 보여주곤 했고, 친구들은 부러워하곤 했다.

시계를 뽐내기 위하여 햇볕을 가리는 척하면서 손목을 내보였다.

 

그러나 그도 길지 않았다.

시계 케이스 갈이가 오히려 짜증나기 시작했다.

고장이 잦았다.

시계 속과 케이스가 딱 맞아야 시계 결속도 잘 되고 잘 갈 텐데 재료, 부품, 기술이 열악한 현실에서 그럴 리 만무였다.

걸핏하면 멈추거나 속에서 덜거덕거렸다.

수시로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해시계나 배꼽시계를 쓰는 편이 정확했다.

불만스러운 천덕꾸러기 같은 케이스 갈이 시계였다.

지금 같으면 골동품 같은 시계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케이스 갈이 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일 것이다.

한데 그 때는 왜 그렇게 허접한 외양을 쫓느라고 그랬는지 순박한 소년의 맘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전대미문으로 해괴망측한 후보 갈이를 하려다가 절단난 모모네를 보면서 시계 케이스 갈이 생각이 났다.

어설프게 작전을 펼친 측도, 어정쩡하고 어리바리하게 작전에 참가한 용병 측도, 천당과 지옥을 넘나든 병사 측도, 작전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이런저런 측도 다 망신살 뻗친 피해자라 볼 수 있을 텐데 왜 그런 갈이 작전이 펼쳐졌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 저질러진 일이고, 끝난 일이다.

폐해와 후폭풍이 만만치 않겠지만 이겨내야 할 것들이다.

슬기롭고 지혜롭게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아둔하하고도 사악한 일이 안 벌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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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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