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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대천 변전소

by Aphraates 2025. 7. 11.

 

어제는 남포에 있는 대천 변전소에 갔었다.

보령화력에서 철거한 재사용 362kV GIS 1조의 운송 및 임시 보관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1995년도 전력연구원에서 나와 소장으로 부임하여 1년여를 근무하다가 다시 대전 동구 용전동 사옥의 정보지원과장으로 갔으니 꼭 30년 만이다.

감개무량하여 소내를 죽 둘러보았다.

많이 달라졌다.

리모델링한 감시 제어동과 2회선에서 4회선으로 늘어난 산언덕의 154kV 인입 철탑만 그 자리에 있었지 다른 것은 다 변했다.

옥외 철구형 변전소는 옥외 GIS 형으로, 1 Bank 60MV이던 M.Tr(주변압기)3 Bank(180MVA)로 용량 증대되어 사택 자리로 옮겼다.

변전소를 현대화 작업화 하다 보니 8,000여 평의 대지 중에 한 1/4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나대지로 남아 훤해 보였다.

듣자 하니 그 자리에 에너지저장 장치 ESS 설치가 계획돼 있단다.

 

변전과 토건 분야 불공장 YB와 근로자분들한테 제가 30년 전에 여기 소장이었다고 하니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너무 오랜 옛날이야기다.

그 소리를 듣는 누군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니 하는 탄성이 안 나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대천에서 함께 하던 동료들이 떠올랐다.

상급부서이든 청양 전력소 윤() 선배 소장님을 비롯한 동료 간부 및 직원들은 빼고서다.

사내외로 어지간히도 말썽을 부리던 문제아 3인방 중의 한 사람인 임()은 갑작스러운 지병으로 소천한지 몇 년 됐고, 전북대를 나온 김()은 정년 퇴직했는지 어떤지 소식을 모른다.

장항이 고향인 충청인이나 부산 사람이 된 김() 기술사는 명예퇴직하고 강원도 태백 HVDC(초고압 직류송전) 건설 현장에 있어 가끔 소통하고 있다.

전화를 넣어봤다.

서로가 반갑기 이를 데 없었다.

한 세대가 지난 후에 여기 대천으로 다시 왔기에 신고한다고 했더니 깜짝 놀랐다.

여차여차하여 왔다고 자초지종을 얘기하고는 편안하고 즐겁게 대화했다.

예전의 청양 나와바리로 일하기는 수월하나 새로운 맛은 덜하다고 고향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산다고 했더니 웃었다.

김 기술사도 어차피 강원도 타향살이이니 애들 엄마와 함께 틈틈이 강원도와 경상도 북쪽 일원을 중심으로 가 볼 곳은 다 가 보고 섭렵해보라고 하였던 그렇지 않아도 그리하고 있다면서 좋아하는 눈치였다.

나도 삼천포살이 3년 하면서 그런 재미가 쏠쏠했다면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잘하기 위해서는 심신을 달래줄 필요도 있다면 구석구석도 다녀보라고 했다.

그리고 강원도든 충청도든 근처에 가게 되면 서로 연락해서 꼭 만나 회포를 풀자고 하였더니 이를 데 있겠느냐면서 좋아했다.

 

평소 지론으로 당부의 말도 건넸다.

나보다도 더 잘하고 있겠지만 내가 늘 말하는 대로 OB로서 또한 전문가 기술사로서 이름값, 얼굴값, 밥 값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일렀다.

그 말씀에 늘 공감하고 고맙다고 했다.

완벽하게는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늘 가슴속에 새기고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잘하겠다고 하여 내가 고마웠다.

 

많은 것을 주는 옛사람과 옛것과의 해후(邂逅)였다.

저절로 몸과 맘이 편해지는 것이 이래서 세상은 살맛 나는 것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나다.

좋게 그대로만 뇌 두는 세상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호사다마(好事多魔)는 있기 마련인가 보다.

 

다 된 밥에 코 흘리거나 잘 돼 가는 일에 초치는 사례는 여전하다.

폭염주의보가 말해주듯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바닷가가 시원한 게 아니라 바다에 햇볕이 반사되어서 그런지 깊숙한 내륙 빌딩 숲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고약한 날씨였다.

변전소 소내와 작업 현장을 돌아보고는 변전소 뒤편에 있는 보령 종합운동장 카페로 갔다.

아메리카노 라떼 얼음과 바닐라 라떼 얼음 12개를 주문하여 갖고 와 우리 GIS 파트와 대전 장완 아우님 아들의 설비 파트 근로자분들에게 건네며 잠시 땀 좀 식히라고 했다.

자주 안 하는 음료이지만 시원하니 좋았다.

얼음도 시원했지만 마주치는 웃은 띤 구슬땀의 얼굴이 더 시원했다.

예전 소장실 앞에서 동료이자, 부하이자, 아우이자, 후배인 김 기술사와 격의 없이 화통하게 얘기 나누는 게 참 좋았다.

거기까지였다.

 

대화가 끝나고 스마트폰을 검색했다.

공사(公私) 메시지를 확인한 연후에 기사를 검색했다.

환하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기사가 있었다.

() 남과 권() 님의 하남자 논쟁이었다.

공격하는 측에서 나는 상남자이고 너는 하남자라 하였고, 받아치는 측에서도 똑같이 그랬다.

 

정신 줄을 놨다.

정신 나갔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다.

에라 O간이들아, O치기들아, OO벙벙이들아 생각 좀 하며 살고, 속 좀 차리고 살라는 말부터 나왔다.

착하고 선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 쫓아다니며 훼방 놓는 놀부와 청개구리 같은 존재가 되니 속이 후련하냐고 다잡아 묻고도 싶었다.

 

내우외환의 사람들이다.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 깨진다.

비렁이끼리 자루 찢는다.

아생연후살타의 아사리판이다.

누워서 침 뱉기다.

제 살 깎아 먹기다.

신선놀음이 아니라 쌈박질에 도낏자루 썩는지 모른다.

기름통을 짊어지고 섶으로 뛰어든다.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못 하고 엉뚱하게 뚱딴지같은 일만 한다.

입만 살아 있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

 

희망이 안 보이는 잔돈푼들에 해당하는 말들이다.

 

하남자라......,

멋쟁이 남자를 지칭하여 또는, 별스럽지도 않은 남자를 추켜 세우며 비웃는 말로 상남자라고 하는 것은 들어봤지만 하남자는 처음이다.

다른 데에서도 잔머리가 잘 돌아가지만 이런 데서도 팡팡 돌아가는 데 자기 발등 자기가 찍는 격이다.

 

하남자(下男子)는 대장부(大丈夫)라는 의미 상남자(上男子)의 대칭 개념으로 쓴 것 같다.

착각하는 거다.

그런 식이라면 하남자는 졸장부(卒丈夫).

더 가혹하게 말한다면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뭐 때서 O한테나 던져주라는 말을 들어도 쌀 것 같다.

 

어제는 그랬는데 오늘은 재반전이다.

부정적인 것은 노, , 노다.

다 잘해보자는 취지이고, 다 잘살아 보자고 하는 몸부림이고, 다 뉘우치는 처절한 반성이라 하자.

험담이나 뒷말은 하지 말고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긍정적인 측면을 먼저 보고 원수를 네 이웃처럼 생각하라는 말씀처럼 동행(同行)하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https://youtu.be/DhZ967FQVps?si=3ByYL5V28551INZG

은희 - 꽃반지끼고 -197년-Lyric Video (가사 비디오) ,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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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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