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이지만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의장석에 있는 의사봉을 서로 갖겠다고 물리적으로 쟁탈전 벌이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법률적으로 의사봉을 두드려야만 이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손바닥으로 두드려도 행위 자체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정작 해야 할 합의는 이루지 못하고 한낮 나무 방망이에 불과한 의사봉을 자기편으로 가져가야겠다는 것인지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에 그렇게 필요하면 여러 개 깎아서 갖다 놓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내용만 좋다면야 고상한 모양의 의사봉을 두드려 통과를 시키던 좀도둑이 의사봉을 훔쳐갔는지 보이지 않아 발끝으로 의장 단상을 툭툭 쳐서 통과를 시키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국회에서고 어디서고 답답한 사람들 가슴 두드려 더 답답한 가슴 만드는 안 보이는 방망이질이 아니라 아픈 가슴 살살 두드려 막힌 거 뚫어지게 하는 보이는 방망이질이었으면 좋겠다.
의사봉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만장일치가 되어 시원하게 방망이질을 하면 기분이 좋을 거 같다.
무슨 안건을 놓고 사전에 충분한 토론과 의견수렴을 하고, 막후에서 합의한 것에 대하여 의장이 요식행위로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리면 피차가 보기 좋겠지만 안건 자체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 채 통과 여부를 가늠하는 의사봉만 수중에 넣으려고 한다면 참 볼썽사나울 것이다.
의사봉을 안 두드리는 만장일치도 그렇다.
가을 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가 난상토론을 벌이던 회원들이 총무의 중재로 한 곳을 정하고는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며 박수로 추인하면 모임이 더욱더 화기애애할 것이다.
그렇다고 만장일치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어서 드러내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속내도 있다.
혼자서 결정하면 100% 만족할 수 있겠지만 둘 이상만 되면 100%가 만족되도록 의견 일치를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뚜렷하고,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뜻이 다 맞지 않아서 반대하고 싶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고 해서 일이 순탄하게 잘 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집행하는 측에서는 반대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듬어야 하고, 추종하는 측에서는 결정된 것이 다소 못 마땅하더라도 잘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소수의 의견을 무시했다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후유증을 겪게 되고, 억지로 따라가면서 내 생각이 옳았는데 하는 미련을 두었다가는 하는 일이 재미가 없어 가재미눈을 뜨고 바라보게 된다.
악법도 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고, 찬성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을 뒤집어 놓고 봐도 그렇게 극과 극처럼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정해진 것이 100%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한 번 하자고 컨센스가 이루어진 것은 해야 한다.
여기서 툭 튀어 나오고, 저기서 툭 삐져나오고, 거기서 터트리면 되는 일없이 분란과 소모전만 계속되어 득 될 것이 없다.
일을 진행하다보면 작은 실수를 한다거나 피치 못하여 룰을 어길 때가 있을지라도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니 결정된 것은 한다는 기본 마인드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겠다.
홀짝제로 인하여 차량을 운행하면 안 되는 날이다.
홀짝제는 공무수행과 공공기관 출입 시에 해당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사적인 차량 운행은 홀짝제의 제약을 안 받는다.
하지만 사적일지라도 홀짝제를 감안하지 않고 차량 운행을 하려면 어딘지 모르게 뒤통수가 가렵다.
전에 10(5)부제 때도 그랬다.
특수 근무형태이기 때문에 10(5)부제를 엄격하게 적용할 수는 없었지만 지키자고 한 것은 같이 지켜야지 이런저런 사정 들어 필요에 따라 하나 둘 예외를 두다보면 지켜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런 마인드여서 그런지 자율적인 권장사항이었는데도 어쩌다가 지키지 못하면 어기면서 느끼는 묘한 쾌감보다는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앞서곤 했다.
전 근무처 앞에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이 있었다.
어느 날 5부제로 차량을 운행해서는 안 되는 날에 무심코 차를 갖고 갔다.
5부제 적용을 강제 받지 않아도 되고, 한적한 곳이라서 누가 보는 사람도 없어서 차를 그대로 출입해도 큰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다들 하자고 약속한 5부제인데 내 편리대로 당당하게 갖고 들어 갈 용기가 나지 않아 그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께서 손님이 온 줄 알고 나오셔서 나를 바라보셨다.
차 문을 열어 놓은 채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할머니 저는 저 위에 근무하는 사람인데요 차를 내일 아침까지만 여기에 두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불편하시다면 다른 곳으로 가고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괜찮아요. 사람만 오갈 수 있으면 되고 혹시 누가 또 차를 댈지 모르니 한쪽으로 대고, 울타리 안 상하게 해 줘요”라고 하시었다.
남의 집 마당에 차를 댄다고 소리 지르며 당장 차 빼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웃는 얼굴로 허락하시는 것이 고마웠다.
헌데 사람 염치도 없고 얼굴 두껍기도 하지......,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하듯이 그 집을 나오면서 “그런데 할머니, 앞으로도 가끔 그럴 경우가 있을 거 같은데 할머니가 안 계시더라도 차를 대고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자 “그러구려. 사정이 그렇다면 해야지요. 마당만 푠 안 나게 하면 괜찮으니 그렇게 하시구려” 하시고는 들어가셨다.
그렇게 구두 계약(?)을 하였지만 일 년 여 기간 동안 있으면서 실제로 할머니 집 마당을 이용한 적은 몇 번 안 됐다.
그래도 그동안 마당 이용 잘 했다고 인사 정도는 하고 왔어야 하는 것이지만 떠날 때는 할머니를 뵙지도 못하고 그냥 와 버렸는데 언젠가는 음료수라도 한 박스 사들고 가서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 때만 해도 그렇게 메마르지 않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떠난 그 얼마간의 잠깐 사이에 그런 인간미를 벌써 잊어버리고 단물만 쏙 빼 먹고 뱉어버리는 인정머리 없는 모습이 된 것 같다.
오늘은 업무 차 그 곳에 가게 되었는데 짝수 날이어서 홀수 번호인 내 차를 운행하면 안 되는 날이었다.
내방객 신분이니 차량 홀짝제의 제재를 당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어서 망설여졌다.
그 곳에서의 업무가 끝나면 다른 곳에 가서 해야 할 일도 몇 건 있고 해서 누군가 하고 카풀을 해서 갈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면 동네 공영 주차장에 주차하던지 어떻게 되겠지 하고 출발하여 도착하고 보니 그 할머니 집 앞이 텅 비어 있었다.
서행을 하다가 무턱대고 할머니 집으로 쑥 들어갔다.
차 문을 닫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전처럼 문 앞에서 쳐다보시었다.
그 때서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음료수 생각이 불현듯이 떠올랐지만 때는 이미 늦으리였다.
얼른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 집 마당에 차를 대도 된다는 우리 계약은 아직 유효하지요? 급한 일이 있어서 왔는데 차를 갖고 들어가면 안 돼서 그래요” 라고 인사하였더니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다른 곳으로 인사 이동되어 갔다는 것을 모르시고 한참 만에 왔다고 생각하셨을 테지만 도둑놈이 제 발 저리다고 하듯이 나는 미안하고 다급함 마음에 허둥지둥 그렇게 인사를 한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생각하니 사람이 그게 아니었다.
내가 필요할 때는 요긴하게 잘 써 먹다가 그럴 필요가 없게 되자 일언반구도 없이 나 몰라라 하고 내뺐으니 사람 도리가 아니었다.
또한 고마움의 표시로 음료수라도 대접해야겠다는 마음을 잠시 가졌다가 그 마저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다 막상 다시 그런 상황에 직면하고 나서여 “아이쿠, 음료수!”하고 말았으니 그 또한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음료수를 사 들고 일부러 할머니를 찾아뵐 것은 아니고 다음에라도 기회가 되면 잊지 말고 실행해야 할 텐데 그도 장담하지 못하니 언제나 돼서야 사람의 도리를 할 것인지 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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