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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며느리와 탕자

by Aphraates 2008. 9. 22.

남들은 해 마다 애를 쑥쑥 잘 낳기도 하더만서도 어느 집 며느리는 하나도 낳지 못하였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갈등으로 며느리가 집을 나갔고, 집안은 쑥대밭이 돼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며느리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것도 그렇게 기다리던 애를 배고 있었으니 좋지 않은 일로 집을 나갔던 것은 유감스럽지만 임신을 하여 돌아왔으니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며칠 전에는 전어와 관련하여 집 나간 며느리를 생각했었다.

헌데 오늘은 그런 전어 굽는 냄새가 아니더라도 소박맞아 집 나갔던 며느리가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문을 두드릴 거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나만의 생각이 그런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들이 오늘 하루 만이라도 돌아 온 탕자(蕩子)를 맨발로 뛰어나가 맞이하는 성경 속의 자비로운 아버지처럼, 맨발이 되어 찾아 온 며느리를 버선발로 맞이하는 사랑스런 시아버님처럼 되지 않겠나 하는 예감이 든다.


그렇다면 누가 집나간 며느리와 탕자이고, 누가 인자한 아버지와 시아버지일까?

그렇게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면 좋던 기분들이 반감된다.

그러니 그런 거에 딴죽 걸지 말고 본인 자신이 때로는 며느리와 탕자가 되고 아버지와 시아버지도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좋던 기분을 반감시키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마냥 좋은 기분으로 나갔다.

그래서는 안 되는 데 오늘은 누가 뭐로 사람들을 긁어 놓고 시험에 들게 할까 하는 근심걱정이 앞서던 평소와는 알았다.

그러나 좋은 기분은 여지없이 제지당하고 말았다.

그대로 그렇게 놔두지를 않았다.

돌아올 때는 쥐어뜯기고, 인상 찌푸리고, 실망하고, 가증스러움에 뒤돌아볼 것도 없이 어두운 얼굴과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그래도 좋은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왜 그런 분위기에 나를 스스로 담가 업된 것을 다운시킬 필요가 있느냐며 자신을 컨트럴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앙금이 남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만들어 함께 하려고 하지만 자기들은 100%이고 네들은 1%이니 따라오라고 하는 방법이 내용의 진위와 성사 여부를 떠나서 틀렸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도둑놈도 도망갈 곳을 보고 쫓으라 하였고, 물고기도 물꼬를 터주고 몰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고 투들이기만 하니 그러면 그럴수록 분위기만 더 냉랭해지고, 사람들만 무덤덤해진다.

그들도 그런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날로 늘어나느니 뒤 틀어지는 심사에 심통뿐인데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이 없으니 더 꼬인다.

그 들이 그런 망가진 분위기를 만들던, 그러다가 그렇게 다 엎어버리고 발랑 나자빠지던, 성질을 못 이겨 머리털을 다 쥐어뜯던 그 거는 그들의 일이자 그들의 발등을 찍는 일이니 어찌되던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고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나대 로면 된다.

월요일에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억눌릴 텐데 그게 아니고 이른 아침부터 기분이 업되니 위대하신 당신의 위업이자 사랑이니 고마워하며 힘차게 출발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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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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