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공주니믄/남그스기/얼어두고/서동 방으로 밤에 몰래 안겨 가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서동요(薯童謠)”다.
그를 가르치시던 뚱보 국어 선생님과 듣기 싫어하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고전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셨던 그 선생님께서는 향가 공부 시간만 되면 당신이 서동이나 되신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 가사를 몇 번이고 읊조리시고 나서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학적인 창작성과 예술적인 감각을 예찬하셨다.
그러고 나서는 향가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서동요는 교내 시험은 물론이고 입시 시험의 단골손님이니 백제의 서동 왕자가 신라의 선화 공주를 사모하는 마음에 그 노래를 경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여 아내로 삼았다는 내용과 함께 삼국유사, 신라 진평왕, 향가와 설화, 선화공주와 서동(무왕)을 외우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우리들 입시 시험에 관련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선생님과는 정반대였다.
수업시간에 말소리는 못 내고 서로 눈빛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이번에 하는 서동요 이야기는 몇 번 일거라며 양 손의 열 손가락을 몇 차례 오므렸다 폈다 하였고, 선생님이 눈을 감으시고 무드를 잡는 동안 친구들은 듣기 싫어서 함께 눈을 감고 딴 짓을 하였다.
선화 공주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지만 가상의 인물일 거라고 한다.
가상이던 실존이던 간에 좀 허구성은 있는 것 같다.
나라와 나라의 왕족끼리 하는 정략결혼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것도 아니고 구설수에 휘말려 억지로 결혼을 했다는 것은 설화(舌禍) 같은 설화(說話)로서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다만 서동요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것만은 틀림없다.
서동은 참 지혜롭고, 천 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시대에도 고도의 언론과 여론 플레이를 했으니 말이다.
설화가 아주 없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대변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천 년보다 훨씬 전에 서동이 그랬던 것은 분명 외곽을 때리는 언론 플레이와 여론 몰이였다.
그 결과로 서동은 뛰어난 방법으로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는 대박을 터트린 반면에 선화공주는 그에 속수무책으로 두 눈 벌겋게 뜨고 당하여 어멀쩡한 서동을 남편으로 삼게 되었는데 맘에 드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잘 통하는 구애작전인 것 같다.
또한 서동이 그렇게 마른 날에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더 희박한 확률 게임에서 승리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도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격언은 있었지만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는 격언은 없었던 것 같다.
서동요와 비슷한 것으로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설화도 있는데 그 설화에서는 말이 씨가 된다는 격언과 함께 바보를 장군으로 만들어 나라를 구하도록 했으니 지아비를 하늘처럼 모셔서 손해 볼 거 없다는 말이 통했던 것 같다.
내가 다니는 길목에 드라마 “서동요” 촬영지가 있다.
그 드라마가 방영된 것이 이 천 년대 중반이었으니까 끝난 지도 몇 년이 되었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익산과 부여 인근에 있는 세트장을 직접 들려보진 않았다.
그 드라마에 관심이 별로 없었고, 문경 새재에 있는 또 다른 세트장에 갔을 때 앙상한 모습에 허망해 했던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서동요 세트장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인기를 누리던 드라마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듯이 지금쯤은 관리가 잘 안 되고 초라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 세트장은 방송사에서 사용 종료된 것을 지방자치단체가 넘겨받아 관광 상품화 하였을 텐데 드라마를 연상하며 한 번 둘러보는 것은 몰라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좀 그렇다.
그런데도 도로 곳곳에 “서동요 촬영지”를 알리는 관광 안내 표지가 있고, 가끔 이벤트 행사가 벌어지는 것을 보면 어렸을 적에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하던 가두방송을 다시 해도 좋을 듯 하다.
속으로는 그런 드라마 세트장 하나로 많이도 우려먹는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수익성을 중시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짭짤한 재미가 있는 효자는 못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수익성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서동 왕자님은 당대에서는 물불 안 가리는 선전 선무로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였고, 후대에서는 이름 하나로 후세에게 까지 돈을 벌어주며 연연히 이어지고 있으니 그 이름은 천세만세로 빛날 것이다.
칠갑산 자락의 고향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향에서 여러 가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몇 백리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아닌데 왜 통 발걸음을 안 하느냐며 얼굴도 보고 소주라도 한 잔 같이 하게 오라는 것이었다.
기관단체의 부탁을 받고 홍보 차원에서 연락을 한 것이 아니고 순박함 그대로 친구로서 전화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맘이 동하지는 않았다.
친구들한테 연락을 자주 안 하니까 그런 것 같은데 꼭 참석해야 하는 특별한 애경사가 아니면 만나기도 어렵다.
그러나 다른 동네의 인위적인 세트장이나 사업성을 감안한 꽃 축제 같은 곳에 안 가서 그렇지 오다가다 고향 구석을 살며시 들렸다 오는 애향인(愛鄕人)인데 그런 것을 모를 리 없는 친구가 왜 그렇게 무심하냐고 하는 데 좀 미안하고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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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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