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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반반씩만 나눠 닮았으면 좋으련만

by Aphraates 2009. 5. 3.

자식 남매(男妹)를 둔 어느 집을 보면 이런데......,

그와 비슷한 가정이 많은 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렇다는 연구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딸은 맏이든 막내든 엄마를 닮아 야무지고 알뜰하다.

가정의 개인생활과 학교의 공동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집안 일 좀 도우라고 얘기 안 해도 스스로 찾아서 척척 하고, 공부하라고 말 안 해도 제가 알아서 하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

변변한 과외 한 번 제대로 안 시켜도 가고 싶은 학교에 철떡 붙어서 잘 다니고, 용돈 몇 푼 안 주는데도 알뜰하게 사용하여 항상 여유가 있다.


아들은 위든 아래든 아빠를 닮아 물러 터지고 헤퍼 딸과는 사뭇 다르다.

가정생활이나 학교생활이나 문제가 많다.

공부하라는 말이 엄마 입에 배었고, 잠시만 한눈팔면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뭘 하지 말라는 말을 쉴 새 없이 해야 한다.

학교에서고 학원에서고 시험 점수 한 번 제대로 받아오는 적이 없더니 원서만 내면 “어서 오십시오” 하고 대환영하는 학교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학교에 마지못해 다니고, 많은 용돈을 줘도 며칠 만에 홀딱 해 먹고는 더 타 내려고 잔머리를 굴리며 보챈다.


어쩌면 그렇게 다를까?

그리고 어쩌면 그리도 제들 부모를 빼 닮았을까?

특별하게 먹는 것도 없는데 앞뒤로 툭툭 삐져나와 뚱보로 향하는 엄마와 먹어도 먹어도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홀쭉이를 면치 못 하는 아빠와 같은 상반된 모습으로 닮아 간다.

닮으려면 좋은 것이나 닮을 것인지 왜 그렇게 안 좋은 것만 닮는 것인지 엄마는 속 터진다.

야무진 딸은 관심을 안 둬도 제 앞가림을 하니 별 관심이 없고, 딸이 뭘 암만 잘 해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지 잘 하는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무른 아들한테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뭐 하나라도 더 해주려 노력을 하고, 웬만한 잘 못을 해도 예쁘게 봐 주고 뒷수습을 다 해준다.

애착이 더 가는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그 모양이어서 속상하는데 엄마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불어나는 내 살 좀 쪼그라드는 남편이 가져가기를 바라듯이 아들이 딸의 반에 반만이라도 닮아주기를 바라며 내 속으로 난 새끼들이지만 왜 그렇게 딴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한탄한다.


야무진 엄마가 아들에 대한 편애가 심한데 반해 무른 아빠는 똘똘한 딸이나 흐릿한 아들이나 다 사랑스럽게 대한다.

그래서 아빠는 엄마로부터 가장이 그러니 아들이 저렇다는 바가지를 긁히는데 당사자인 아들한테는 아무 소리 못 하면서 아빠한테 괜한 화풀이를 하는 엄마는 웃기는 짜장 이다.


그런 현상에 당사자들의 걱정은 크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가족이기 전에 개인적으로도 잘 하는 것이 있으면 못하는 것이 있어 장단점이 가려진다.

가족을 넘어 단체나 국가적으로도 그렇게 반반으로 갈린다.


심지어는 사랑과 나눔의 선을 추구하는 신앙에서도 그런 것이 있다.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은 다르다.

사회가 신앙을 따라가야지 둘을 동반 선상 놓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둘을 혼동하는 오류를 범한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신앙인조차도 그런 오류를 범하면서 현실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변명으로 잘 못 된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신앙과 현실은 별개일 수 없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데 앞뒤가 뒤바뀌어 문제가 발생한다.

신앙적으로는 아무 것이 없어도 신앙생활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맨손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다.

신앙으로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려 해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재산도 모자라 몸과 마음까지 다 줬던 J모 사건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신앙은 오로지 신앙이라는 것을 알면서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 김(金) 선생의 엉터리 XY이론을 살펴보자.

X는 신앙심도 깊고, 인정도 많고, 몸도 건강하여 뭐든지 하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신앙인이다.

그런데 사는 것이 넉넉하지 못 하여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니까 신앙생활을 하는데 운신의 폭이 좁아 뒷전이다.

Y는 신앙심도 적고, 인정머리도 없고, 건강치도 못하여 알찬 신앙생활을 하지 못 하는 날라리 신앙인이다.

헌데 사는 것이 여유가 있어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든든하게 되니까 신앙생활을 하는데 운신의 폭이 넓고 항상 앞전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신앙인은 X와 Y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X와 Y를 대충 반반으로 나누고 거기에 조금씩 빼거나 더하면 된다.

XY 상대의 혼성 그룹도 있고, X도 Y도 아닌 하대의 국외자 그룹도 있고,  X와 Y의 중간인 중대의 회색 그룹도 있다.

그 그룹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어떤 그룹에 속하던 한 사람 한 사람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고귀한 존재들이어서 다루기가 어렵다.

그런데다 대고 요즈음은 XY분류법도 뒤죽박죽으로 되었다.

XY이론대로라면 신앙심은 부족하지만 돈을 갖고 있는 X는 조건 없이 잘 써야 하는데 무엇이 틀어졌는지 있는 사람이 더 지독하다는 식으로 이해타산이 엄청나게 심하고 호주머니를 굳게 닫은 채 열지 않는다.


X야, 그러면 되겠어? 신앙생활에도 권리와 의무가 따르는 것이니 그에 충실해야 하고, 신앙생활 하는 데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모른 척 했지? 그 때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쌀 됫박이라도 사다줘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듣자하니 암암리에 할 것은 다 하고 다닌다면서? 양심의 가책이나 뭐 없고, 부끄럽지도 않아?

Y야, 너는 왜 그러니? X하고는 정반대이니 어떻게 한다니? 다 내 뜻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너무 폭폭 하다고 생각되지 않니? 서로가 반반씩만 나눠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 또한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답답하다.


야무진 딸에 무른 아들을 둔 부모 심정이나 날라리 신앙을 가진 Y에 돈독한 신앙을 가진 X를 자식으로 둔 하느님 심정이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일 거 같은데 그 장벽을 일거에 타파할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심하지만 답이 잘 안 나와 묵상에 잠기는 하루이다.

좋은 날에 좋은 것을 생각하지 못 하고 왜 그렇게 매력 없는 세속적인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하지만 그 것 보다도 더 안타까운 것은 사라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나타나 괴롭히는 현실 문제에 말려들어 허우적거리는 부족하고 옹졸한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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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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