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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뭐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by Aphraates 2009. 5. 8.

어버이들은 자신들이 어린이날을 특별하게 챙겨주려고 하는 것처럼 어버이날을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저 작은 격식이 차려지는 날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해도 챙겨야 할 다른 일들이 많은데 그런 날까지 일일이 다 챙기기는 버겁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세태에 너무 밀착하다 보면 그럴수록 더 세상이 메말라지니 자식들까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눈깔사탕 하나라도 어버이 손에 쥐어드리며 예전에 즐겨 드시던 것이니 잡숴 보세요 하는 정이 있어야 사람 사는 맛이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며 후회스러워 한다는 자체가 나 자신부터도 그러지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는데 너무 깊은 후회는 더 깊은 상처를 만드니 그러기 전에 고쳐가면서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닌가 한다.


오늘은 어버이 날인데 어디로 갈까나?

자식으로서, 어버이로서 할 도리를 제대로 한 것은 아니나 요식행위는 이 날이 있기 전에 벌써 다 가불하여 다 해 버린 터이다.

그런 마당에 고민을 한다는 것이 좀 미안스럽기는 하지만 너무 그런 식으로 연결 지어 인과 관계를 따지지 말고 그래도 뭔가는 해야만 했다.

미리부터 생각해둔 것이 없어서 목적지는 고사하고 동서남북 어느 방향을 택할 것인지도 망설여졌다.

둘이서 부담 없이 갖는 시간인데 너무 가까운 데를 가면 서운할 것이고, 너무 멀면 피곤할 것이니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 행선지를 정하지 못 하였다.

그래서 일단은 가 본지 한 참 됐고 가뭄 때문에 물이 쪽 빠졌다는 대청호(大淸湖)에 갔다가 결정하기로 하였다.


테크노 벨리와 신탄진을 거쳐 한적한 강변길을 달려 대청호에 갔다.

먼저 댐 수문 쪽과 호수가를 한 바퀴 돌면서 호수와 멀리 보이는 청남대 쪽을 바라보았다.

호수 자체는 물이 많이 빠져서 보기가 그리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푸르른 수목과 한적함이 어우려저 그런대로 좋았다.


다음에는 잘 다듬어진 광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곳 분위기는 어버이날이 아니고 어린이날 후속 행사장 같았다.

아래 광장에서는 몇 군데 유치원에서 나왔는지 하늘색, 노랑색, 빨간색 옷을 입은 수많은 병아리들이 줄지어 보모를 따라가면서 어찌나 삐악거리는 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위 광장에서는 어디 초등학교 저학년 남녀 아이들 수 백 명이 나이든 남자 선생님 몇 분과 젊은 여자 선생님들 여러 분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이동하는데 싸우는 놈들, 소리 지르는 놈들, 뛰어다니는 놈들, 뭘 먹는 놈들, 전화나 게임을 하는 놈들 별의별 놈들이 다 있었지만 이동하는 줄은 그런대로 죽 이어졌다.

대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대청호인데 학생들도 수업시간 때에 와서 싱그러운 산하와 함께 하면 생각 자체가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온 아이들은 이 아저씨와 아줌마의 귀를 따갑게 하고 정신없이 만들지라도 절대로 뭐라 한지 않고 아이들은 그래야 한 다며 잘 하고 있다는 박수를 보내니 복 받은 아이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벤치에는 정년퇴직이나 했음직 해 보이는 남자들 몇몇이 앉아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도 남자들은 직업이 있어야지 집에 있으니 마누라의 구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하면서 신세 한탄을 하였다.

커피를 뽑아 갖고 오다가 그 소리를 들은 데보라가 “다 자기들 잘 되라고 그러는 것이고, 함께 잘 살아보자고 그러는 것이지 마누라들이 뭐 다 뺑덕어머같간디 그러나?” 하면서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그 벤치의 남자들의 아내들을 역성들고 나왔다.

그 시점에서 내가 “뭐라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 입장이 그렇다는 것이야” 하고 벤치의 남자들 편을 든다면 우리 부부 분쟁이 일어나 오늘 나들이는 제로 빵일 것이 뻔 하므로 빙그레 웃고 말았다.


호수 가에서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제초기로 풀을 깎고 있었고, 관리 초소에서는 어린 아이들 누가 댐 안으로 들어가지나 않는지 감시하느라 경비원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댐 준공탑 부근에는 몇몇 안 되는 어른들을 향하여 음료수를 파는 나이 든 이동주보 아줌마가 뭐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소나무 아래서는 사진사 아저씨가 우리 부부를 향해 멋진 사진 한 장 찍어주겠다며 오라고 손짓하였다.

휴게소 안에서는 중년의 부인들이 장갑을 낀 채로 물을 뿌려가며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고, 광장 비탈 언덕에서는 노인티 나는 아주머니들 여러 분이 채양이 큰 모자를 쓰고 천으로 목을 가린 채 허리를 폈다 굽혔다 하면서 화단 가꾸는 일을 하고 있었고, 그 아래 길 가에는 아이들 싣고 온 버스의 운전기사들인지 장단지가 훤히 드러나도록 바지를 걷어 올린 채로 무슨 얘기인가를 재미나게 하고 있었다.


그런 어버이들의 모습은 문의 톨게이트를 통고하여 중부 내륙고속도로를 드라이브 하며 본 도로에서 작업하는 사람들과 중간에 들린 화서, 선산, 추풍령 휴게소에서도 비슷하였다.

물론 다들 따끈한 아침밥들 드시고 시원한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소일하거나 일터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모녀지간인지 몸이 불편한 노인한테 수제비를 떠서 입에 넣어주는 초로의 부인 모습이나, 한 가족인지 받들어져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어른들을 테이블에 앉히고나서 주문한 자장면을 가져오며 무슨 큰일이나 하는 것처럼 소란스러운 인상적인 모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어버이날과는 관계없는 듯한 모습들이었다.

다른 날 처럼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날 만큼은 누군가로부터 뭔가는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들 같은데 그러지 못 하는 모스들이 좀 안쓰러워 보였다.

특히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휴게소 나무 그늘 아래에 차를 세우고 한 잠 때리고 나왔는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서서 담배를 피우는 나이 지긋한 운전기사를 봤을 때 이런 것도 노동의 신성함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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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