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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by Aphraates 2009. 5. 9.

출근하기 위하여 길을 나섰는데 상큼한 것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럴 때 누가 와서 뜬금없이 내 차를 들이 받아도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니 각자 알아서 수리하자면서 그냥 보낼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너그럽던 내 마음도 잠시였다.

그 것은 갑자기 날씨가 변하여 비바람이 친다거나 집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다고 전화가 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순전히 무례한 어느 인간 때문이었다.

사람을 가득 채운 써금써금한 승합차가 오른 쪽에서 갑자기 튀어 나와 내가 가고 있는 톨게이트 하이패스 입구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고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좋았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래, 네가 어진간히도 급했는가 보구나. 나는 안 급하니 네가 먼저 가라. 하지만 그러다가 사고 나면 너만 손해니 조심은 해야 할 것이다” 하고 들어서는데 그 차가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못 하고 통로 한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패스 카드 판독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가보다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야 비상 깜박이가 깜박이고 후진 표시등이 들어오더니 앞 조수석에서 검은 안경을 낀 별로 기분 좋지 않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나와서는 나를 보고 수신호를 하며 다짜고짜로 차를 뒤로 빼라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통행 카드 장치가 안 된 차인데 하이패스 통로로 잘 못 들어서서 다른 통로 가려고 후진한다 것을 알아챘다.


나는 손으로 안 된다고 한 번 흔들었다.

이어서 톨게이트 사무실을 가리키며 거기 가서 통행 티켓을 받아오라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자 그 남자는 급하다는 시늉을 하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차를 뒤로 빼라고 다시 재촉하였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에 별 관심 없이 다시 한 번 가볍게 손으로 사무실로 가리키고는 음악을 들었다.

도로 질서를 잘 지키고 인상 좋은 사람들이라면 내 차를 뒤로 빼줄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빨리 가려는 속셈에 불법 추월로 나를 놀래키고, 그 통로가 한적한 거 같으니까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거기로 들어섰고, 잘 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제 사정만 고집하는 비도덕적이고 무질서한 모습의 전형이니 그대로 둬서는 안 되고 뭔가는 깨닫도록 해야 한다.


형편없는 사람들이었다.

통로를 잘 못 들어서서 티켓팅을 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푼수를 떨었다.

차에 타고 있는 제들 일행한테 자기가 처리하겠다고 폼 잡는 것도 아니고 어디다 대고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인지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차에서 나온 그 사람이 우락부락하게 생기고 체격이 인왕산 호랑이 정도는 되는 것이 막 나가는 사람같이 보였다.

그렇지만 하늘이 두 쪽 나도  아닌 것은 아니다.

하나도 겁나지 않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것에서 나의 이해와 양보를 바란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사회 정의구현(?)을 위해서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물러서서는 안 될 일이었기에 나는 단호했다.

만일에 그 사람이 차를 안 뺀다고 나한테 와서 시비를 걸면 나도 그에 상응한 시비를 걸 것이고, 앞에서 자기들은 급한 게 없다며 차 시동을 끄고 죽치면 나는 그 차가 뒤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지 못 하게 바짝 붙여 시동을 끄고 트렁크에서 돗자리를 꺼내 펴고 앉아서 유성 시장 통 중국집에 자장면 시켜다 먹으며 몇날 며칠이고 책이라도 볼 참이었다.


그렇게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X자 야광 조끼를 입은 여직원이 달려 와 티켓을 그 차 운전수한테 주며 빨리 통과하라고 재촉하였다.

그 것도 모르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는 다른 일행이 창문을 열고 해결 됐으니 빨리 차에 타라고 소리를 지를 때까지 나를 향하여 손짓을 하며 차를 뒤로 빼라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를 하였다.

아주 건방졌다.

그 놈의 싸구려 검은 안경이나 벗을 것이지......,

햇볕도 드세지 않은 아침나절에 그를 쓰고서 제가 무슨 대단한 경호원이나 되는 듯이 그러는 것이 얄미웠고, 꼴값하고 있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설설 기어가는 꼬지지한 그 승합차를 홱 따돌리는 것으로 그 일은 종결을 짓고 잊어버렸다.

그런 일로 신경을 써 봐야 내 운전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약간 상하려고 하는 기분이 푹 상할 수도 있어 그래봐야 나만 손해니 그를 더 이상 맘에 둘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벌곡 휴게소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그런 무례한 사람들은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한 것은 좀 과했다는 반성을 잠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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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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