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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잘 나가다가 그만 삼천포로

by Aphraates 2009. 5. 9.

경상남도 사천 시 시민들이 행정구역 명칭도 삼천포에서 사천으로 바꾸고 했으니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은 이제 좀 쓰지 말아달라고 했단다.

그 지역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삼천포가 좋지 않은 의미로 쓰였다고 해서 그런 것 같은데 시민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안 써야 되겠지만 다른 지역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사천보다는 삼천포가 더 정감 있고 좋은 거 같으니 공개적으로는 아니어도 몰래 쓰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사람들 심리가 죽 써 오던 말을 갑자기 쓰지 말아 달라고 해서 안 쓸 것도 아니고, 쓴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벌금을 내는 것도 아니니 그리 나쁜 의도가 아니라면 가끔 쓰는 것은 갖고 뭐라고 할 것은 아닌 거 같다.


우리 부부는 승용차를 타고 나들이를 자주 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들이 하면서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져 짜그락거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조수(女)의 잔소리와 운전수(男)의 튀는 소리 때문이다.


그 첫 번 째 발단은 연료 부족을 알리는 경고등이다.

함께 나들이 할 계획이 있으면 전 날에 기름을 든든하게 채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다른 것은 세심하게 챙기면서 그 것은 등한시하는 편인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습관이 그렇게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보따리를 챙겨 싣고 둘이 차에 타고서 시동을 걸면 그 얄미운 경고들이 발갛게 들어온다.

기름 넣는 것을 깜박한 것이 겸연쩍고 잔소리하는 것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서 “어제 기름을 넣는다는 것을 깜빡했네. 경고등이 들어왔을지라도 50km 이상은 간다니까 가다가 넣지 뭐” 라고 한다.

그러면 그 때부터 조수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아니, 당신은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여유를 두면서 왜 유독 기름 넣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감각해요? 언제 넣어도 넣을 것을 미리미리 넣으면 안 돼요? 그러다가 정말로 기름이 똑 떨어져서 길거리에서 헤매봐야 정신을 차리던지 할라나 이해가 안 되네요. 저 경고등만 보면 내가 스테레스 받는다니까 왜 그래요? 가다가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불안하게 그러지 말고 가다가 가까운 주요소에 가서 넣고 가요” 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운전수는 당연히 듣기 싫다.

“괜찮다는데 왜 그러지? 운전하는 내가 다 알아서 하니 걱정하지 말고 묵주기도나 시작하라고. 저기 가다보면 맘에 드는 주유소가 있으니 거기 가서 넣을 테니까 말이야” 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조수가 다시 답답하다는 듯이 “이렇다니까. 가까운데서 넣으면 될 걸 가지고 왜 거기까지 가서 넣는다는 거예요? 주유소에 우렁각시라도 숨겨 놨어요 아니면, 거기서 기름 넣으면 좋아하는 식회라도 한 사발 줘요? 제발 그러지 말고 저기 저 주유소에 가서 넣어요. 그리고 내가 잔소리 안 하더라도 저 불이 들어오기 전에 기름 좀 넣고 다녀요” 라고 반박한다.


그렇게 가벼운 일전을 하고 나면 살랑거리던 나들이에는 무거운 기운이 감돈다.

운전수 생각 같아서는 안 간다고 시동을 꺼 비리던가, 그럼 당신이 운전하라고 키를 줘 버리던가 하고 싶다.

허나 가정의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조금 가다 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무거운 기운이 사르르 사라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알았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내가 오늘 인심 한 번 팍 썼다” 하면서 가까운 주유소에 들렸다 간다.


두 번 째 발단은 역시 승용차 문제인데 과속 때문이다.

운전수는 상습적으로 과속하는 운전 습관은 아니다.

그런데 이야기 하면서 한적한 길을 달리다보면 규정 속도를 50%이상 초과할 때가 있는데 그 때도 잔소리가 시작된다.

꾸벅 꾸벅 졸다가 기분이 이상한지 눈을 뜬 조수가 계기판을 보고는 질겁하며 좀 천천히 가자고 한다.

말 쌈도 하기 싫고, 실제 너무 달린 것도 사실이어서 그 소리를 듣고 속도를 규정 속도 인근까지 줄이긴 하지만 여기서도 변명 없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차에 대해서 잘 아는 OO아빠 같은 베테랑들이 그러는데 차는 가끔 무리하다싶을 정도로 밟아 줘야 한다고 그러던데? 그리고 길 좋은 데서는 어느 정도 달려 줘야 다른 차들한테 피해도 안 주고 그게 예의라는데? 그러니 너무 너무 걱정하지 말고 드실거나 드셔” 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러면 조수는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OO엄마 말을 들어보면 OO아빠는 절대로 무리하게 운전을 안 하고 천천히 달리기 때문에 그 차를 타면 답답하다고들 한다고 그러던데? 그리고 도로가 훵하니까 그렇게 과속을 하지 무슨 남의 차를 배려해서 빨리 달린닥는 것이지 되는 말을 해야지요? 지금 봐요. 이 좋은 도로에 차가 얼마나 다니나요? 그러지 말고 내 말 들어서 손해날 거 없으니 좀 들어요” 라고 한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앞뒤를 봐도 오가는 차가 별로 없는데 다른 차와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과속을 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도 그냥 물러서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변명을 하고 반박을 당하는데 조금 가다 보면 나들이의 즐거움으로 인하여 삼천포로 그대로 미끄러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논쟁은 나들이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그 것도 그대로 끝이지 질질 끌지는 않는다.

둘이서 긁고 버텨봐야 고쳐질 것도 아니고, 다음에 또 그럴 것을 문제 삼아 얘기해 봐야 남는 것이 없고 답이 없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논쟁이 싫어서 나들이를 못 갈 정도는 아니니 그저 그런 것이라며 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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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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