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인생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의 어록에서나 봄직한 묵직한 말인 거 같은데 그는 누구일까?
아니다.
그는 이름 난 전문 요리사나 미식가도 아니고, 고고한 인품의 인생 철학가나 식품 영양학자도 아니다.
규모는 작지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회전초밥을 잘 하기로 소문이 난 어느 일식집의 요리사가 한 말이다.
젊은 나이의 그가 신념에 찬 목소리를 그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경력은 일천하지만 몸소 체험하여 터득한 것인지 아니면, 큰 요리사로 커가는 입장에서 그렇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나는 음식 탐하거나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서양식, 중국식, 일본식 요리는 물론이고 정통 한식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고 맛도 잘 모른다.
세계 최고의 음식을 갖다 줘도 최고라고 하니 좋기는 한 것 같은데 뭐가 뭔지 모른다고 할 것이다.
대신에 한국식으로 냄새를 풍기며 고기를 굽는다거나 주방 창문에 김이 뽀얗게 서리도록 찌개를 자글자글 끓인다던가 하면 숟가락을 들고 서서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기다릴 것이다.
퇴근을 하는데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 식사나 같이 하고 싶은데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좋다고 하였더니 모처럼만에 회전초밥이나 먹자면서 어디어디에 무슨무슨 일식집이 있는데 거기로 몇 시에 나오라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시간이 돼서 약속한 그 집에 갔다.
작고 조용하여 초라한 기운도 있었지만 품위 있고 분위기 있어 보이는 집이었다.
이야기하면서 요리사가 주는 대로 초밥을 먹었다.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와 먹는 음식 속도에 따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일식이란 것이 원래 그렇지만 눈깔만한 술잔에 맹물처럼 약해빠진 술을 한 모금씩 마시며 먹는 초밥은 영 썰렁하고, 뭘 먹기는 먹는데 감질 나는 것이 영 시부정치 않았다.
그 보다는 깔끔한 용모와 세련된 매너의 요리사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초밥을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캐치하였는지 초밥을 만드느라 손을 계속 놀려가면서 간간히 초밥에 대해서 말해줬다.
회전 초밥은 담백한 것에서부터 기름기 있는 것 순대로 드셔야 제 맛이 난다면서 처음에는 계란말이 초밥, 그 다음부터는 흰 살과 붉은 살과 등 푸른 생선, 마지막으로 튀김류라고 하였다.
먹는 방법에 대해서도 얘기해줬다.
생선 초밥은 뒤집어서 준비된 간장 소스에 생선 부분을 살짝 찍어서 생선이 혀에 닿도록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야 신선한 생선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다른 초밥을 먹기 전에 초생강을 한 조각 먹어 다음 생선 맛에 젖게 하면 더 좋다고 하였다.
재미있어 하며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내가 “그런 얘기는 대충 들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는데 ‘그게 그렇군요’ ” 라고 관심을 기울이자 이번에는 초밥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저에게 있어서 “요리는 인생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초밥 만드는 것과 인생을 연결시켜 해박하면서도 코믹하게 이야기했다.
초밥이라고 해 봐야 양념이 추가된 밥 덩어리에다가 생선을 얹은 것이고, 거기에 와사베 간장과 초친 마늘 한 조각을 얹어 먹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요리사 얘기를 듣고 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요리도 괜찮았지만 그 요리사의 자부심이 부러웠다.
그 정도라면 요리는 인생이라는 말을 하고도 남음이 있고, 장차 큰 요리사가 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에 대해서도 새삼 알게 된 것도 있다.
우리나라 궁중이나 양반집, 서양의 왕가나 귀족가에서 음식을 만들고 먹는데 그렇게 까다롭고 격식을 갖추는 것은 체면을 차리거나 부담을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맛을 최대한 살리고 맛있게 먹기 위함이란 것이다.
요리는 고사하고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자라온 나로서는 지금도 남자 요리사나 남자 미용사를 보면 “머슴애가 돼 갖고서 시리 무슨 꼴이람?”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이다.
하지만 초밥 하나에도 인생이 담겨있고 그게 내 인생이라고 말하는 요리사를 보고 “그렇지, 그렇고 말고. 멋진 인생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그 멋진 요리사.
그런 멋들어짐에다가 개인적으로도 학교와 공부 수준도 어느 정도 되고, 인간적으로도 음악과 문학과 여행을 좋아하고, 신앙적으로도 깊이가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을 텐데......, 그렇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다가는 떨어지기 쉬우니 이쯤에서 접는 것이 좋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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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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