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임원회의에 참석하려고 구 도심지에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평상시 같으면 2-30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퇴근시간과 겹쳐 길이 막힐 거 같아 일찍 나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원 쪽 신호등에 택시가 서 있어 그 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와 받았더니 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는 후배였다.
지금 모임 장소로 가려고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웬일이냐고 하였더니 급한 목소리로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약속 장소가 선배님 집 근처의 한우 집으로 바뀌었으니 모임 시간에 맞춰 그리로 오라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고 나니 조금만 늦게 연락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안도의 한 숨이 나왔다.
그리고 바로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탔을 때 약속 장소가 바뀌었다는 전화를 받았으면 도중에 기본요금만 내고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면 되는 것인데 택시 기본요금 안 날아간 것이 다행이라고 하다니 참 좀스럽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바쁘게 걸어가는 퇴근 시간의 사람들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했기에 예약을 못 하고 장소를 바꿨다는 것인지 이거 선배들 O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뭐냐는 불만과 함께 내가 또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인데 모임 한번 하려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후배한테 모임에 참석하여 총무가 주선하여 회장단에서 짜온 계획을 추인하는 박수나 치는 임원이 그러다니 어지간히 염치도 없었다.
그나저나 시간이 어정쩡했다.
약속시간까지는 1시간 남짓 남았는데 새로 정해진 약속 장소는 천천히 가도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가깝다고 다시 집에 들어가기도 그렇고, 볼 일도 없는데 어디 들려서 시간을 때우기도 그랬다.
잠시 망설이다가 길 건너편에 있는 선사유적지에 갔다.
유적지도 둘러보고, 잘 가꾸어진 언덕의 벤치에 앉아서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하교 길의 학생들을 보고 웃기도 하다가 시간을 봤더니 그래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번에는 십여 년 전에 번성했던 먹자골목으로 들어섰다.
그 때 그 시절에 참 어지간히도 드나들던 곳이었지만 옛집들은 안 보이는 것 같았다.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그래도 그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그 때 그 시절 멤버 중의 한 동료였다.
내가 옛 골목을 걸으며 옛 생각에 젖어 있는데 옛 사람이 전화를 하다니 그거 참 우연의 일치치고는 묘했다.
반가워서 그렇지 않아도 선사 거리를 걸으며 옛날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렇게 연락이 되다니 이심전심이라고 하였더니 “저도 그래요. 고개를 들어보세요. 앞 건물 2층에 OOO집이라고 보이시지요. 거기에 저를 비롯하여 몇 사람 모여 있으니 시간 괜찮으시면 들렸다 가시지요”라며 웃었다.
하느작거리던 태도가 일변하여 바쁜 걸음으로 올라갔더니 아직 몇 사람이 더 와야 한다면서 또 다른 후배와 둘이 상 앞에 앉아 있었다.
서로 안부와 근황을 이야기하고는 나는 요 앞집에서 7시에 동창회 모임이 있어서 가던 중이라 하였고, 동료들은 걸어가시는 폼이 무척 여유로웠다면서 그럼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본게임은 옆집에 가서 하고 여기서는 오픈 게임으로 몇 순배만 하자고 하였다.
“콜”이었다.
소맥(燒麥)을 말아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원하게 서너 컵 했는데 안주는 굽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게 좀 미안했는지 아무리 급하고, 옆집에 가면 더 좋은 것이 있을지라도 안주는 몇 점 해야 되지 않느냐고 하기에 “원래 본게임과 메인 안주는 별로잖아? 우리들은 오픈 게임 체질이고, 메인이 스끼다시 스타일이잖아? 나는 괜찮으니 천천히들 들어요” 라고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집의 모임에 가서 본게임을 하였다.
오픈 게임에서 먼저 맛을 다시고 다져져서 그런지 좋은 것도 좋은 줄을 모르겠고, 다음 정기 총회에 대해서 논의하다가 그런 것은 회장단에서 알아서 하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서포트할테니 얘기하라고 결론 내고는 모임을 마쳤다.
약속 장소가 바뀌는 바람에 그런 일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잘 된 것이었다.
다 마무리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본 게임과 오픈 게임이 다 좋았다.
하지만 체질은 잘 안 바뀌고,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가 재미있다는 것이 맞는지 아무래도 메인 메뉴(Main Menu)보다는 서브(Sub Menu)가 더 좋았던 것 같았다.
http://blog.daum.net/kimjyyhmhttp://kimjyykll.kll.co.kr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