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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고시 텔

by Aphraates 2009. 5. 13.

모처럼만에 비가 왔다.

적은 양인데다가 찔끔찔끔 오는 것이 감질났다.

우리 지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천 지역은 호우주의보까지 내려서 물 걱정을 덜겠구나 하였더니 기상 예측 오보였다고 했다.


우산을 펼 것도 없이 손에 들고서 새벽 산책을 나갔다.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그 것도 비라고 행세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거리가 다른 때 보다 한산했다.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고 제끼는 것도 아닐 테고, 해장부터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라도 붙여먹지 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늘 보이던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놀자 골목을 나서는 여자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질 않으니 비 때문에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뜸 하니 볼거리도 없어 자연스럽게 주변 건물과 상가로 눈이 돌려졌다.

별의별 것이 다 있었고, 요란했다.

어제 오늘 사이에 갑자기 들어 선 것들도 아니련만 저런 것도 여기에 있었나 할 정도로 많았다.

이용은 안 할지라도 동네 주민으로서 뭣이 있다는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누가 물어보면 안내라도 해 주는 것인데 늘 그 앞을 걸어 다니면서도 뭐가 있는지도 몰랐으니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보니 “사임당 고시텔”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간판 색상으로 봐서는 최근에 들어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벌써 문을 열었지만 내가 무심코 지나다니다 보니 못 본 것 같았다.

이름 자체는 좋은 예감인데 그 위치가 고시 텔과는 좀 안 맞는 놀자 골목 인근이고, 큰 도로에 인접해 있고, 위층에는 술 집 아래층에는 여자들 속옷 가게와 함께 하고 있어 이름 값 하기는 어려울 거 같았다.

하기사 대학교 정문 앞에 가보면 원투 룸과 고시 텔이 청루홍등의 유흥업소 건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면서도 MP3을 귀에 꼽고 공부를 해야 잘 된다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니 오히려 절에 들어가 삭발을 하고 피골이 상접하게 공부하던 예전과 비교할 것은 아니다.


며칠 전에는 퇴직하신 선배님께서 전화를 하였었다.

현재 살고 있는 원투 룸을 팔고 OO대학 앞에 있는 방 삼십 여개가 되는 고시 텔을 샀다고 하셨다.

우선은 현재 원투 룸이 안 팔려서 걱정이시더니 좋은 값에 잘 팔리고, 그 보다 몇 배 더 큰 고시 텔을 사서 후진 양성에 힘쓰신다니 축하드린다면서 간단하게 말하여 원투 룸에서 고시 텔로 말을 갈아 탄 것이라고 하였더니 웃으시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다.

나는 그 방면에 관심가질 일이 전혀 없었다.

신림동 서울대 앞에 유명한 고시촌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대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의 심야 놀이터인 그 곳에 고시촌이 있다니 이상했고, 또한 낯설은 이름의 고시 텔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선배님 말씀이 원투 룸은 한 물 갔고 지금은 고시 텔이 유행이란다.

고시 텔은 고시생들이 있는 공부방이 아니고 옛날의 독서실과 지금의 원투 룸을 합쳐 놓은 자취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입주자들은 대개가 학생들인데 모든 생활 시설과 생활용품이 갖춰져 있어서 이불하고 세면도구만 갖고 들어가 살면 되는데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의 수익성은 별 거 아니라고 하셨다.


호텔이고, 호스텔이고, 모텔이고, 고시 텔이고 말하자면 여관(旅館)의 후예들이라 할 수 있겠는데 예전부터 하기 가장 손쉬운 것이 여관이라고 하였으니 늦으막하게 그 쪽에 눈 돌리고 발을 들여 놓은 그 선배님의 고시 텔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100원이 생기면 서울대생은 책을 사 보고, 고려대생은 막걸리를 사 먹고, 연세대생은 구두를 닦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책방도 사라져 몇 개 없고, 막걸리도 다른 술에 치어서 안 먹고, 구두도 한 번 사면 다 헤지도록 신어도 괜찮은 지금은 그 SKY 학생들한테 무슨 이름표를 붙여줬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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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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