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청와대라?
그럼 다른 것은 오둑막집이고?
출출한 것이 닭백숙이 먹고 싶었다.
뭘 먹어야겠다 싶으면 바로 먹어야 한다.
생각이 나면 뭐든지 늦어도 1시간 이내로 입에 대령해야 하는데 바로 백숙을 만드는 것은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 쪽에는 많은 비가 내린다는데 여기는 꿀꿀한 날씨여서 그런지 지저분한 것 넣지 않은 뽀얀 닭백숙 생각이 간절하지만 생각으로 끝나야 할 것 같았다.
데보라는 파마하러 갔으니 한 참 더 있어야 올 것이고, 식당에 가서 시켜 먹으면 시간이 좀 단축되긴 하겠지만 제 맛이 안 나서 가고 싶지 않았다.
데보라가 돌아왔다.
파마하러 간다고 할 때 여름이고 하니 가능하면 짧게 하는 게 좋겠는데 파마를 안 한 운동선수처럼 짧게 깎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고 하였더니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면서 남자들은 다 그렇다고 하였다.
그래도 내 주문이 좀 먹혀들어갔는지 파마를 하고 오는데 보니 머리를 잘랐는지 시원스러워 보였다.
머리 뒤통수를 내 눈 앞에 갖다 대면서 괜찮으냐고 물어보기에 잘 했다고 했더니 좋아했다.
말은 하고 봐야 하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고 했겠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으러 작은 방으로 가길래 닭백숙이 먹고 싶다고 말하려고 “저기 말이야” 라고 했더니 왜 그러느냐며 서재로 왔다.
“내가 말이야 잘 익은 백숙 닭고기 몇 점과 파 총총 썰어 넣은 담백하고 따끈한 닭 국물 좀 먹고 싶은데 나가기는 싫고 어쩌지?”라고 운을 뗐다.
“이심전심인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잘 됐네요. 어떤 닭으로 할까요? 아파트 상가의 닭은 큰 토종닭으로서 한 참 푹 삶아야 하고, 먹다가 남으면 나중에 얼큰하게 닭 개장 끓이면 당신 좋아하잖아요? 아니면 갤러리에 가면 닭 크기별로 있어서 주먹만 한 것 한 마리 사다가 삶아서 둘이 먹고 국물 마시면 딱 맞을 텐데 그걸로 해요?” 라고 물어보았다.
내가 뭘 먹고 싶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내 입에 딱 맞게 해 오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이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갤러리 닭이 맞을 거 같기는 한데 다녀오려면 번거롭잖아? 상가 닭도 괜찮으니 알아서 해봐” 라고 했더니 속 보인다는 표정으로 “어떻게 하라고요? 뭐 파를 종종 썰어 넣으라고요? 입은 청와대네요” 라며 웃었다.
내 입맛에 맞게 맛있게 해준다는 데야 더 할 말은 없었지만 병아리 어미 하고 관련되는 일이니 “짹”하는 소리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아니, 입은 청와대라고? 그럼 다른 것은 다 오두막집이라는 거야 뭐야? 듣고 보니 조금 서운해지려고 하는데” 라고 했더니 말이 그렇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닭과 대파를 사다가 백숙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너무 배고팠다가 먹으면 맛이 없으니 이거로 요기하고 기다리라며 한과와 커피 한 잔을 쟁반에 받쳐 갖다 놓고는 닭을 사러 나갔다.
6.25 동란 직후에 태어난 배곯은 세대라서 그런지 유달리 배고픈 것을 참지 못 하는 서방님을 배려하는 아내의 마음이 고마웠고, 배고픈 것을 참고 기다리다가도 너무 시간이 지체되면 성질부린다는 것을 헤아려 주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러니 입이 청와대가 됐던 오두막이 됐던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제도 입(口/Mouth)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머리에 맴도는 닭백숙이 곧 나올 텐데 아무렴 어떤가?
배고픔에 허덕인다는 것 보다는 기다림에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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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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