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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평생을 한결같이 "배불리 먹어라"

by Aphraates 2009. 5. 18.

조카의 결혼식과 피로연이 끝나고 상도동 어머니한테 갔다.

능동 어린이 대공원 뒤편에서 거기까지 가는데 어찌나 교통체증이 심한지 차를 밀고 가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간신히 들어선 남단 올림픽 도로에서는 헤매기도 했다.

내내 잘 다니던 길이었다.

그런데 조금 방심하다보니 노량진 수산물 센터 샛길과 63빌딩 대방동 샛길로 빠져 나오질 못 하여 양화대교 국회의사당 뒤편으로 빙빙 돌기도 했다.

네비가 없어도 길 찾는데 는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치던 자칭 길잡이의 스타일이 완전히 구겨졌고, 나도 복잡한 서울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지만 그런 환경에서 사는 대도시 사람들은 참 안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는 뽀얀 피부와 단정한 차림으로 고즈넉하게 계셨다.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누가 누구인지 사람들을 알아보시다 못 알아보시다 하시는데 지금은 어떠실지 궁금했었다.

나와 데보라가 들어서자 막내아들과 며느리가 왔다고 손뼉을 치며 좋아하셨고, 함께 들린 인근에 사시는 사촌형님 내외분도 단번에 알아보시고는 예전에 하시던 대로 “종복이도 왔네” 하시는 것으로 보아 건강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 외손자 결혼식에 왔다가 들렸다고 해봐야 알아들을 리 없으실 거 같아서 엄니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였더니 환하게 웃으시면서 나는 이제 못 돌아다니니 자주 자주 오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늘 그러셨듯이 이내 아들 먹는 걸 걱정하셨다.

다른 것들은 많이 잊어버리셨는데 그 것만은 변함이 없으시다.

뭣좀 챙겨다 줘야 는데 어쩐다니 하시었다.

아들이 왔으니 뭔가는 챙겨서 먹여야 하는데 맘은 간절해도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르고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걱정이 되시는 것이다.

그러자 외출복을 갈아입으신 형수님께서 입에 들어가면 녹는 부드러운 케이크형 과자와 바나나와 차를 내 오셨다.

피로연에서 식사를 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잘 아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이야기만하고 있으면 어머니가 뭘 안 먹인다고 금방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는 것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눈요기 도우미를 하고 어머니가 하나라도 드시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푸짐하게 내와야 하는데 조촐하게 내온 것이 맘에 안 드시는지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과자와 케이크를 하나씩 드시더니 얼른 나한테 주면서 먹으라고 하였다.

먹는 시늉을 하면서 얼른 하나 까서 어머니께 드렸더니 당신은 배부르시다면 서 자꾸 나보고 먹으라고 하셨다.

그러자 형수님께서 “어머니가 드셔야 아들들도 먹지요” 하면서 어머니 입에 넣어드리니 우물우울 드셨고, 물을 마시시면서 맛있다고 하시고는 우리들 보고 어서 먹으라고 손짓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들도 과자와 바나나를 까서 조금씩 먹으면서 적당한 크기로 떼어 내어 어머니 입에 넣어드렸더니 그만 먹는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받아 드셨다.


그렇게 자식들과 며느리들과 조카 내외가 어머니 방에 앉아서 어머니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한참 동안 했다.

어머니는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셨겠지만 분위기상으로 봐서 편안하신지 자식들이 이렇게 모이니 좋다고 하셨다.

우리가 가려고 준비를 하니까 자고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가서 돈 벌어야 또 엄니 보러 오지. 진지 잘 드시고, 작은 며느리가 하자는 대로 하고 잘 계세요” 라고 하였더니 그래야지 하시면서 작은형수님이 시키는 대로 “잘 가거라” 라고 하셨다.

몇 년 전에는 우리들이 간다고 나서면 여간 서운해 하시는 눈치가 아니었고, 차조심해라 ․ 물 조심해라 ․ 불 조심해라 ․ 좋게 좋게 지내라 하시면서 주문 사항이 많았는데 이제는 기력이 약해지시고 그런 감정도 무디어지셨는지 별다른 말씀과 표정이 없으셨다.


빗길을 달리면서 “우리 어머니도 얼마 못 사시겠구나”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더니 데보라가 갈수록 쇠약해지시는 것 같다며 그게 우리네 길인 걸 어쩌겠느냐며 시무룩했다.

올 해로 아흔 살이 되셨으니 천수를 다 하시는 것이고, 다들 복 받은 할머니라고 말들을 하지만 막내아들로서는 그런 말이 위로가 되지는 못 했다.

언제까지 뭣 좀 챙겨다 줘야 한다는 소리와 밥 배부르게 먹으라는 성화를 받칠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영원히 받아도 괜찮은데 하는 바람이었다.

평생을 한결같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 배부르게 먹어야 한다” 하고 자식들을 걱정하시는 어머니는 돌아가시어 저승에 계셔도 마찬가지일 텐데 어머니 나이에 근접해 가는 자식들은 그를 제대로 헤아리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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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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