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입사 32주년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임진강변 전방 수색대에서 육군 병장으로 연초에 만기 제대를 하고 대학생 신분으로 그 해 연말에 입사하였다.
1977년 11월 7일에 서울 성북구 쌍문동 연수원(현재 한일 병원 자리)에 입소하여 한국전력(韓國電力) 사원으로 첫 발걸음을 했다.
그 때 함께 입사한 동기생들이 전기와 사무를 포함하여 각 직군별로 하여 400여명 정도였었다.
그 중에서 중간에 분리된 발전 자회사를 포함하여 현재 한전에 얼마나 많은 동기들이 남아있는지는 파악해봐야 알겠지만 제법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영욕이 함께 한 성상(星霜)의 세월이었다.
입사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긴 세월이 훌쩍 가버리고 이제 그만둬야 할 때가 되었으니 감개무량한데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온 것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남들은 우리들을 보고 “신의 직장”이라고 한다.
그런 소리를 듣는 당사자로서 실제가 그런지 따져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그런 것도 아니고, 행여나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직장이라 할지라도 그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과 실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막연하게 “그 곳은 그렇다더라” 하는 식으로 쉽게 얘기하는 것은 아주 실망스러운 일이다.
여기저기서 그렇게 말들을 할 때는 듣기 싫어서 뭣 좀 제대로 알고나 말하라며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그래도 국가 사회적으로 다들 어렵다니까 동참하는 의미에서 아무 말 안 하고 참는다.
우리나라가 이 만큼 잘 사는데 는 모두의 노력이 있었다.
남들은 죽을 고생을 하는데 우리들은 편안하게 탱자탱자 하면서 산 것이 아니다.
공무원과 회사원의 중간자적인 공기업 직원 입장에서 주어진 일에 목숨을 걸고 정진해 왔는데 토사구팽(兎死狗烹)을 할 테니 이해하고 인정하라고 한다면 말없이 일 해 온 사람들의 개인의 명예와 식솔들의 호구지책은 어쩌라는 말인가?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한 수난을 얼마나 겪었는지 몰라 불만을 토로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신의 직장이라는 소리는 최근에 만들어 낸 말이지 우리들은 어렵고 공직과 사기업이 잘 나갈 때는 없던 소리다.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해도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자기들이 잘 나갈 때는 무엇 하나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아직도 한전에 다니냐?" 하고 갖잖게 여기며 웃더니만 자기들이 조금 어려우니까 하나라도 더 안 주려고 하면서 “신의 직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밝힌다면 우리들은 뭐라고 대꾸해야 하는가?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바람직스럽지 못한 이중적인 태도가 아니라 할 수 없다.
32년 세월을 지내오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조직이다 보니 최고 직위까지 오른 동기들이 있는가 하면 입사때 직급을 그대로 갖고 있는 동기들도 있고, 이미 고인이 되거나 몸져누운 동기들도 있고, 전국구로 뛰어 다니면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겪으면서도 전력인의 사명감과 직장인의 소명감으로 묵묵히 지켜온 자리들이다.
그런데 쓴 막걸리 한 잔 없이 뜻 깊은 그 날을 그냥 지나치다니 너무 초라하고 쓸쓸하다.
그래도 전 같으면 대전 충남과 전북 지역에 있는 입사 동기생 이십 여명이 모여서 호탕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회사 분위기도 그럴 분위기가 아니고, 사회 분위기도 그런 걸 중히 여길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어떻게, 입사 32주년인데 모여서 소주라도 한 잔씩들 해야 하는 거 아니여?” 라고 말을 건네는 동기들조차도 없었는데 살기가 그만큼 각박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웬만한 곳에서는 그 정도의 근무 경력이라면 훈장도 받고, 융숭한 대접도 받더만서도 그런 것은 고사하고 잊어버릴 만 하면 두드려 패는 동네북이나 안 됐으면 좋겠다고 넋두리하고 있으니 대략 난감이고 비호감이다.
나이로 봐서 대부분의 동기들이 올 해 말까지 아니면,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업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입사 32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한 행사는 없지만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나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열심히 살아 온 세월이었고, 고마운 세월이었다.
회사를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회사와 국가를 위하여, 또한 이미 퇴직하신 선배님들과 남아있는 후배님들을 위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입사 32주년 기념식을 대신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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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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