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직속 상관으로 모시고 있던 오창홍 대장님과 우연히 연결되어 보내주신 것이다.
1976년도 사진이니까 한 세대라는 30년도 훨씬 넘은 세월인데 참으로 기가 막히고 소중한 사진이다.
무슨 기념 사진이지는 모르지만 철책선 바로 및에 있는 훼바에서 찍은 것이다.
헌데 본인은 우째 모자도 안 쓴 알 머리이고, 다른 사진에서는 몰라볼 정도로 야위었는지......,
아마도 제대 말년이라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오창홍
36년 전의 빛바랜 사진을 봅니다. 전에도 가끔씩 열어보며 회상에 잠긴 적도 있었지만 오늘은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있었던 두건의 사건(?)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원예치료 카페에서 저를 찾고 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글을 열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 거주하는 피동섭입니다. 우선 제가 이 카페에 가입과 인사를 드리게 된 것은 오창홍 회장님과 약 40년 전 인연 때문에 회장님을 찾는 중 협회6기 회장님으로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창홍 회장님과 군 생활을 같이한 전우입니다. 회장님이 중대장님이시고 저는 중대장님을 보좌하는 병사였죠. 이렇게 화면을 통해서라도 얼굴을 뵐 수 있어서 무척 반갑고 보고 싶습니다. 카페 관리자님께서는 어렵겠지만 저의 만나고 싶은 간절한 사연을 회장님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카페지기의 댓글 ������반가운 소식이군요. 오랜 세월을 추억하는 모습에서 두 분의 돈독했던 관계를 가름하게 하네요. 아마 꼭 보시고 연락도 하실 것입니다. 우리카페를 찾아주어 감사하구요,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까까머리 시절 펜팔편지 쓸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몇 번의 신호음 뒤에 우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진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댓글을 쓰는 지금도 36년 전 중대 행정실 광경이 세월을 넘어 너무 가까이 다가옵니다.
������아~! 금방 통화했습니다. 저보다 연배인 분이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여 이쁜 따님 까지 둔 상태에서 입대하였답니다. 그 때 저는 총각장교 였구요.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하고 입대한, 특히나 연배인 사병에게 글자 그대로 군대식으로 대했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래도 함께했던 정을 잊지 않고 찾아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소식 닿는 전우들과 소주 한잔 하며 회포를 풀고 싶은 지금입니다.������
몇일 전 우연히 수필 한편을 읽었습니다. 임진강에서 야영객 6명의 목숨을 잃은 참사를 보면서 쓰신 ������임진강������이란 제목의 수필이었습니다.
������그 지역은 내가 육군 이등병에서 병장까지의 군인으로서 청춘을 불사른 곳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그 지역의 이름과 점호시간마다 목이 터져라 복창하던 직속상관들의 관등성명도 생각난다. 군사령관 대장 이세호, 군단장 중장 김용휴, 사단장 소장 소준렬, 연대장 대령 박준병/임동원, 대대장 중력 김금석, 민경중대장 대위 오창홍, GP장 중위 박철성, 선임하사 중사 함중식은 또렸이 기억이 난다. 제대를 하고서는 연대장급 이하의 상관들에 대한 근황은 들은적이 없어 모르지만, 연대장급 이상은 중앙무대에서 이름이 자주 등장하여 ������어������저 사람은 우리 군단장(사단장.연대장)이였는데 하는 소리가 나왔다.������
나를 추억하거나 찾는 그런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까맣게 잊고 살았던 중앙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던 그 이름들..,. 그 작가의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또렸한 이미지 사진을 보면서도 이름과 영상이 흐려집니다. 벌써 3번째의 전화시도도 무위로 끝납니다. 그러나 대위 오창홍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그 분의 그리워집니다. 그다음 날 4번째의 긴 신호음 따라 그리움이 묻어났습니다. 종달새 GP, 비둘기GP에서 상황병으로 근무하셨던 김종연, 짧은 대화 속에서도 가물거리던 기억의 조각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영상이 재생되어 필름이 재빠르게 돌아 어느덧 종달새 GP에 철모를 깊게 늘려쓰고 철책을 돌아보는 나를 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민경중대 본부요원 기념사진,1975년>이라고 적혀있는 앨범속의 피병장은 활짝 웃고 있습니다. 어느 GP 내무반인가 봅니다. <1976년 저축최우수 소대 기념 시진> 속엔 박중위와 함중사가 앞줄에 앉아 있고 김일병은 뒷줄에 앉아 있습니다. 똘망똘망한 눈매가 블로그의 중후한 모습과 오버랩되어 세월은 흘러도 연륜의 흔적은 깊게 묻어 있음을 봅니다.
흔히들 지도자의 유형을 멍부형, 멍게형, 똑부형, 똑게형으로 회자되곤 합니다. 멍부형이란 멍청하면서도 부지런한 지도자를, 똑게형이란 똑똑하면서도 게으른 지도자를 지칭합니다. 앨범들을 들추어 봅니다. 스쳐왔고 머물던 자리들이 보입니다. 계절의 지나간 자리엔 계절의 흔적이 남듯이 내가 지나간 자리에도 남기고 싶지 않아도 어떤 흔적들이 남았을 것입니다. 꽃집에 들렸다 나오면 꽃향기가, 생선가게에 들렸다 나오면 비린내가 묻어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내가 머물고 지났던 그 많은 자리에 어떤 흔적들이 남았을까를 생각하니 한없이 두렵고 부끄러워집니다.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 해������란 어느 유행가 가사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오늘입니다.
(2009. 10. 31.제주수필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