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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비 내리는 정월 대보름날에

by Aphraates 2010. 2. 27.

비 오는 대보름날에 뭘 하고 있니?

동네 형들 하고 또는 동무들과 어울려서 쥐불놀이 하고 밥 훔쳐 먹으로 다니던 시절을 생각하며 풍부한 감정을 만끽하고 있니?

그런 추억과 그리움에 젖을 수 있는 감정이라도 남아있다면 오죽이나 좋겠니?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런 풍속이 사라진지 오래 됐고, 지금 그랬다가는 불을 낸 실화범으로 몰리거나 도둑의 누명을 쓰고 경찰서를 오가야 하니 누가 그러겠니?

그럼 어차피 즐길 수 없는 대보름날이니 차라리 비가 오는 편이 낫다며 고소해 하고 있니?

세상인심이 야박하고, 개인감정이 무디어졌다고 해서 나 자 신까지 그렇게 무너졌다가는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니?

너무 그렇게 극단적으로 판단하지는 마라.


그럼 오늘 어떻게 할 건데?

형편 되는대로 하지 뭐.


오곡백과 맛은 봐야겠지?

새벽에는 내가 먼저 먹기 전에 몇몇 집에 보름나물 배달을 했다.

아침에는 그 나물들 간을 보며 간단하게 먹었다.

낮에는 돌솥에 한 콩나물&곤드레 나물이 들어가는 나물밥을 해서 양념간장에 비벼 먹었다.

호두, 땅콩, 밤, 외국 건과류도 몇 개씩 집어 먹었다.

딱딱한 백과를 깨물며 귀밝이도 하고, 꿩 대신 닭이라고 보름달을 못 보는 화풀이로 한 잔 걸칠 수도 있을 거 같지만 한 쪽 귀가 아직도 멍멍한지라 술은 노 탱큐다.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지 둘이서 코를 맞대고 근심 걱정하다가 잘 다듬어진 잡곡 세트를 사다가 잡곡밥을 지어 하얀 무 채 나물을 곁들여 한 그릇 맛있게 때렸다.


밤에는 사순절 숙제를 해야 하는데 그도 땡땡이치고 창밖으로 비 내리는 야경을 넋나간듯이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검색된 엔카 식으로 부른 우리나라의 대중가요를 들었다.

처음에는 엔카가 조금 이상했고, 생각도 했다.

전에는 왜색조의 노래는 금지곡이었는데 지금도 그런 것인가?

일제 치하에서 겪은 고난이 너무 뼈에 사무쳐 다른 나라한테는 다 져도 괜찮지만 일본한테는 절대로 져서는 안 되다고 하시는 항일 어른들이 보시면 대노하실 것인가?

일본의 간사하고 야한 경향이 체질적으로 맞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나라로 진출한 우리 연예인들의 한류 풍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의문을 가질 것인가?

국가적인 정체성과 개인적인 영혼이 문제로 말썽이 일고 있는 이 판국에 왜 하필이면 그런 노래냐고 우려를 표할 것인가?

국제화 시대에 취향에 따라 노래를 들으면 되는 것이지 요즈음 같은 세상에 촌스럽게 그런 것을 가리느냐며 노 플러블럼이라고 할 것인가?

 

그런 문제들이 간단치는 않지만 엔카와 가요를 리믹스한 노래 자체는 새로운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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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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