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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행색

by Aphraates 2010. 3. 17.

행색(行色)이 초라하다고 깔봤다가 낭패를 본 대표적인 케이스 중의 하나로 춘향전의 월매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수청 들라는 것을 거절하여 고을 원님 변 사또에 의하여 하옥된 딸 춘향이를 구원할 유일한 희망은 서울로 간 이몽룡이었다.

그런데 어찌 됐나?

장원 급제한 이몽룡이 나타나기를 이제나 저제나 학수고대하며 시름하던 춘향 어미 월매는 나타나기는 나타났지만 거지꼴의 초라한 행색으로 밥 한 술 얻어먹으려고 나타난 사위를 보고는 “이제 우리 딸은 죽었다”며 문전박대하였다.

그 창극 장면과 함께 이 몽룡이 변복한 진짜 암행어사라는 것을 알고 금의환향한 사위를 환대하며 행색만 보고 괄시한 것이 못내 미안하여 헤헤거리는 여우같은 주모 월매의 모습도 생생하다.


그 꼬락서니 하곤......,  그 행색하곤......,

면전에서 대 놓고 말하지는 못 하지만 잔뜩 기대했던 사람이 헐렁한 모습으로 나탔을 때 또는, 자기 주제 파악도 못하고 남들을 흉내 내며 갓 쓰고 구두 신은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들은 흔히 눈을 흘기며 그렇게 혀를 차고는 상대를 안 하려고 한다.

그 것은 한 치 앞도 가늠하지 못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야박한 세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보고 느끼는 인지상정이다.


고로 사람은 지위와 격에 맞는 행색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과시를 하고 허세를 부리라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겉모습과 풍기는 이미지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니 그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라는 것도 아니다.


성공한 인생이라면 그에 어울리게 중후하고, 윤기 나고, 호감이 가고, 그만한 일을 하고 다녀야 제 격이다.

그게 아니고 남을 떠보고 탐색하려는 듯이 잔뜩 움츠린 자세로 초라하고 천하게 하고 다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출세하고 성공해봐야 별 거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성공한 사람들로서 성공하지 못한 보통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으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들답게 수수해야 좋다.

제나 나나 여유 없이 알뜰살뜰 살아가는 것은 뻔 한데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자기보다 한 참 윗사람을 흉내 내려고 하다가 살림살이를 파탄내고 부도 맞는다면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가 다리 찢어졌다는 소리 들어 마땅하고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주제파악 못 하는 푼수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쉽지는 않다.

제가 무슨 반골가문의 후손이라고 매사에 청개구리 심보라는 비난을 받는 귀공자가 아니고, 제가 무슨 문학 소년이라고 검게 물들인 야전잠바에 고무신 차림으로 시집 한권 옆에 끼고 상념에 젖어 빗길을 걷느냐는 조소를 받는 돈키호테가 아닐지라도 천성적으로 자신을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거나 멋지게 하고 다니고 싶어도 줄줄이 달린 새끼들에 구차한 살림살이어서 그럴 형편이거나 하기 때문에 원래의 본인과는 다른 행색을 하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와는 안 어울리는 행색을 하는 데에 따른 문제보다는 그를 판단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조심을 해야 한다는데 문제가 더 큰 거 같다.

일시적이든 항구적이든 드러나는 겉모습과 행색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상대했다가 입장 곤란하게 되어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 여자.

하고 다니는 폼이 머릿속도 차고 돈도 좀 있어 보여 접근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단계를 뛰어 넘어 “아이고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하고는 깍때기 홀랑 벗고 야반도주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 여자는 이마빡에 별이 몇 개 붙어있는지 모르는 닳고 닳은 꽃뱀이었다는데 그래.


저 남자.

하고 다니는 것이 영 헐렁하고 볼품없는 것이 가까이 해 봤자 나만 괴롭겠다며 피했다가 덩굴째 굴러 들어오는 호박을 마다한 것처럼 복을 차버려 “아이고 어르신 제가 몰라 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는 체면 불구하고 그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촌극을 벌이는 사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 남자는 손가락 몇 째 안에 드는 재벌가의 후계자였다던가 그렇지 아마.


행색만을 보고 섣부르게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다가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고 멋쩍어 하는 경우를 보니 직선적인 성격이어서 그런 면에서 실수를 할 개연성이 많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어? 당신이 그만큼 삐뚤어졌기 때문에 그런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 것인데 그거는 인정하기 싫지? 조심해라” 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지만 나도 그런 경우라면 내 생각대로 잘 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조심을 하고 신경을 쓰면 크게 실수하고서 안절부절 못 하는 사람들보다는 나을 거 같기는 한데 그런 마음가짐자세를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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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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