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난에 취직하기 어려운 요즈음에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괜찮은 직장에 어렵지 않게 취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격세지감일 것이다.
또한 취직 못 하고 부모나 주변 눈치만 살피며 무위도식하는 청춘들은 모든 것이 자기들 책임이 아닌데도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왜 나는 그런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느냐고 후회하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때가 있었느냐며 믿기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 시절을 거쳐 온 우리 세대들이 생각해도 그 때 그 시절이 좋았는데 실제로 그랬다.
좀 미흡하지만 들어가서 정 붙이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취직하여 일할 맘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곳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일자리가 자기가 원하는 맘에 드는 자리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는데 백 프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요즈음하고는 전혀 딴 판이었다.
특히 보수와 대우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사무관 이하의 하급 공무원(교사, 경찰, 군인 포함)과 공기업(공공기관)은 낮은 봉급만큼이나 인기도가 낮았는데 지금 신의 직장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양 시대를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것을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그 때와 지금은 입시(入試)와 입사(入社)의 전세가 역전된 모습이어서 아이러니컬하다.
그 때 취직 하는 사람들은 몇 직장 시험에 합격해 놓고는 어디로 갈 것인지 망설였는데 흡사 요즈음 대학생들이 여러 곳에 합격해 놓고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 망설이는 것과 같았다.
그 당시의 경제 규모를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나게 작았었는데 세게 10위권 경제대국이라고 하는 지금보다 취직 여건이 훨씬 좋았던 것이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언뜻 생각해보면 산업화, 자동화, 생활향상과 인력 고급화, 생산시설의 외국 이전 등등이 주요한 원인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 본다.
그런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으로 환경이 좋아 호시절이었던 것은 내가 사회 초년생으로 발걸음을 시작한 때이자 세대가 바뀐다는 30년 전의 일이다.
나는 주경야독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오랫동안 기피하던 고등학교 때 전공 분야의 공기업에 울며 겨자 먹기로 취직하였다.
그리고 적성에 맞지 않지만 몇 년간 하면서 사태추이를 관망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한 것이 거기를 벗어나지 못 하고 정년 막판까지 이르게 된 것인데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감개무량(感慨無量)하다.
나이보다 늦게 군에 들어가서 쌍칠(七)년도 연초에 군대를 제대하였다.
거처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따뜻한 봄날에 한남동 학교에 복학 하고는 가구 외판원으로 연명하였다.
얼마나 생활이 어려웠던지 박박 기던 군대는 천국이었다.
그러다가 회사 입사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연수원을 거쳐 두 말 할 거 없이 지긋지긋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는 보따리를 싸 들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회사 입사는 잘 된 것 같지만 버티지 못 하고 학교를 중퇴하고 귀향한 것은 일생일대의 오판이었다.
그 오판을 깨달은 것은 세월이 이미 다 지나가버려 알았다 해도 어찌 할 수 없는 얼마 전의 일이었다.
조수미 씨의 “카테리니 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이고 김희갑 씨의 “땅을 치고 통곡해도 다시 못 올......,” 이었는데 그렇게라도 했으니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못내 아쉬운 것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회사 내에서는 오지 중의 오지로 알려져 있는 고향 본가 근처의 최 말단 부서로 발령을 받아 부임하였다.
업무와 설비에 대하여 며칠간 스터디를 하고 면사무소에 가서 주민 전입신고를 하고 예비군 중대 사무실에 가서 예비신고를 하였다.
그 때에 지금은 그 지역 노인회장님으로 계시는 임(林) 중대장님께서 낡은 나무 책상에서 결재를 하시면서 나를 반가이 맞으셨다.
중대 편성을 하면서 “변전소는 중요시설로서 자체 방호를 해야 하므로 동원훈련 면제 대상으로 분류합니다. 예비군 훈련도 보류 대상이니 훈련기간이라도 특별한 연락이 없는 변전소 현지에서 대기하면 되겠습니다” 라고 하셨다.
예비군 훈련을 귀찮아하는 분위기에서 다 면제해준다니 이게 웬 떡인가 하여 어리둥절했는데 지내다 보니 그런 특례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그 뒤로도 나이 차이가 많은 중대장님과는 각별하게 지냈는데 그 곳을 떠나고서는 한 번도 찾아가 뵌 적이 없어 죄송하다.
예비군 초년은 그렇게 잘 지냈다.
그리고 회사원 퇴직 예정자로도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
군인 예비군 시절에 하지 못한 동원훈련을 회사원 말년에 보충 훈련받는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같은 처지인 퇴직 예정자들 몇몇이서 사무실 방 하나를 만들어 놓고 관련 분야 일을 좀 도와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입 및 기존 직원들과 연계가 되고 자주 마주친다.
다른 사무실, 설비와 공사 현장, 주차장과 식당, 모임에서 그들을 자주 만난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 동안 고생 많이 하셨는데 왜 또 나오셨어요?”하고 농담조로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엊그제 봤을 때 내가 얘기했는데 또 해? 그래. 예비군 소집되어 동원훈련 받으러 왔다. 뭐가 잘 못 됐냐? 좋아서 자원한 것은 아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하는 우국우사(憂國憂社) 충정이니 많이 좀 도와줘라” 라고 한다.
그런 농담에 동료들은 다시 건강하시고 즐겁게 일 하시고 뭐 필요하시거나 불편하신 거 있으면 말씀해 주시라고 다정하게 이야기 한다.
그렇다.
동원훈련을 즐겁고, 효과적이고, 유익하게 잘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자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니 하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조금은 도움이 될 거 같으니 정성들여서 해야겠다.
그 것이 예비군으로서 동원 훈련을 면제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고, 평생을 먹여 살려 준 직장의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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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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