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함에 있어서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그를 철두철미하게 지킨다면 갈등과 분란이 없는 좋은 세상이 될 테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이상향(理想鄕)이고 현실은 그렇질 못 하다.
또한 자기(들)만의 대의명분을 주장해서는 안 되고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호응(呼應)을 얻어야 된다.
남들이 볼 때 그거는 아니올시다 인데 맞는다고 자꾸 주장한다면 그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향촌 아파트 단지 정문 입구의 자동판매기 앞에 택시들이 줄지어 있다.
그 곳은 낮에도 택시들이 정차하여 운전기사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야간이나 새벽에는 차의 시동을 끈 채 정차 이상으로 주차를 하는 택시들도 많은 곳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땅거미가 지기 전에 산책 나가면서 보니 지붕의 택시라는 표시등만 켜 놓은 채의 택시들이 몇 대 줄지어 서 있고, 커피 자판기 주변으로는 운전기사들이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인가를 나누고 있었다.
소곤거리는 것이 아니라 제법 큰소리들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사적인 얘기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들어야 이유는 없는데 지나치면서 들려오는 소리로 판단해 볼 때 대개가 직업적인 정보교환들인 듯 했다.
조금 지나 갤러리아 쪽을 향하면서 앞 놀자 골목 쪽을 바라보니 거기에도 택시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그 택시들은 시동을 켠 채로 운전사가 차안에서 대기 중이니 손님이 타면 바로 출발할 태세였는데 차량 행렬이 줄지를 않았다.
사람들 왕래가 많은 곳에서 대기 중인 택시는 많고, 큰길인 대로에서는 신나게 달리는 택시가 드문드문 보일 정도라면 그만큼 택시 승객은 적고, 택시 영업은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데 나는 이 새벽에 그 광경을 대전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 중의 하나인 갤러리아 주변과 대덕대로에서 동시에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택시 기사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 우연히 승강기에서 그를 만났다.
그 때 “날도 더워지는데 어렵지요?” 라고 했더니 “그럭저럭 합니다. 어제는 전국적으로 파업을 한다고 하여 동참하는 차원에서 차량 운행을 안 했는데 하루 만에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했답니다. 실제로 우리들이 엄청나게 어려운 실정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데 파업한다고 신경이나 쓰겠어요? 파업에 시민들이 호응을 안 해 주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니 파업이 되겠어요? 노조 집행부만 뒈지게 혼나고 말았을 겁니다” 라며 열변을 토했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이해당사자들다운 정확한 진단과 반성인 것 같았다.
가스 값은 오르고, 손님은 없고, 택시는 많고, 운행여건은 악화되니 요금을 올리든 공영제를 하든 먹고 살게 해달라는 대의명분은 어느 정도 서지만 그런 식이라면 우리도 못 살겠으니 어떻게 좀 해달라고 나서거나 묵시적으로 항의하는 대다수의 승객(시민)들로부터의 반응이 싸늘하니 “아이고, 형님. 제들이 말 못 했습니다”하고 수그러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모든 사안들이 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단순하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한 측면만 봐서는 안 된다.
뭘 호소하는 측이나 대답하는 측이나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그를 뻔히 알면서도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다 보니 뾰쪽한 해결책을 찾지 못 하는 것이다.
택시 :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루 열 시간 이상 운전한 수입 얼마에 지출이 얼마고, 한 달에 꼬박 이십 일 일한다 쳐도 한 달 평균수입이 얼마잖아요? 그 돈 갖고 어떻게 먹고 살고 애들 교육시키고 해요? 이건 말도 안 돼요?
농민 : 그래요? 우리 한번 같이 따져볼까요? 사시사철 일 년 내내 땅 파 농사져서 수입이 얼마인 줄 알아요? 다 아는 얘기지만 자세하게 말하면 그런 상황에서 어찌 사느냐고 혀를 내두르며 다 떠나버릴거예요. 그러니 택시 정도면 양반인 줄 알고 잠자코 계세요.
노동자 : 참 배부른 소리들 하십니다. 우리 노동자들 신세가 어떤지 살펴볼까요? 이야기를 들으면 두 양반들 갖고 있는 돈 동전까지 다 내 놓고 도와준다고 하실 거예요. 비참한 실정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으니 그래도 농사지을 땅이라도 있고 운행할 차라도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줄 아세요.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허나 그렇게 침잠(沈潛)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이 가라앉을 테니 너무 그러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내 행복을 찾는 슬기와 지혜를 발휘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허울 좋은 대의명분에 구속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호응 없는 대의명분을 내 세워 화를 자초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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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