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고 했다(人飢三日 無計不出)
서양식 표현으로는 궁핍은 법을 망각한다 (Necessity known no law)이다.
사람이 다급하면 무엇이든 다 하게 돼 있다.
또한 사람이 위축되면 뭐든 다 안 하게 돼 있다.
P는 개인택시를 하고 있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하다.
큰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저축해 놓은 얼마간의 돈을 곶감 빼먹듯이 할 형편은 못 된다.
명퇴하기 전의 경험을 되살려 시작한 것이 그 일이다.
할 만하느냐고 물으면 최선도 아니고 최악도 아닌 그럭저럭 이라고 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가 돈벌이 얘기를 했다.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직업 운전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또한 주변으로부터 택시 업계에 대한 얘기를 들어 실정이 어떻다는 것을 대충 알고 있는 터여서 구태여 자세히 알 필요도 없었다.
P는 쿨하게 개인택시 얘기를 했다.
신세를 한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 아니냐고 대범하게 넘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하루에 00만원 벌어서 가스비와 차량 감가상각비와 각종 공과금등을 제외하면 실수입은 0만원이다.
한 달 맥시멈으로 한다면 20일 운행하므로 계산상으로는 월수입이 000만 원쯤 되지만 볼 일이 있거나 몸이 피곤하여 날을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수입은 그보다 적다.
하고 싶지 않고 재미없는 일이지만 배운 게 그 것이어서 할 수 없이 하긴 하는데 지긋지긋해서 가능하면 끝내고 싶다.
P가 얘기하는 것 역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던 택시의 현실 얘기와 대동소이했다.
쇳덩어리는 만지면 돈 벌고, 기름밥은 굶지는 않는다는 말을 할 정도로 운전수가 깃발을 날리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3D 업종의 하나로 찬밥 신세가 되어 있으니 격세지감이었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면 경제적으로라도 보상이 되어야 맞다.
허나 생각처럼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마지 못 해 영업 운전을 한다는 P의 불평이 이해가 됐다.
일정한 출퇴근 시간이 없이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복잡한 도로를 수백 킬로미터 주행하며 손님들과 씨름하여 손에 쥐는 것이 그 정도라면 장래성 같은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으로 매력이 없을 것 같았다.
P는 말은 그리 시원시원하게 하지만 농땡이 스타일이다.
돈을 벌면 좋고 안 벌리면 만다는 식으로 악착같이 일하는 게 아니다.
아침저녁 러시아워를 피하여 차를 몰고 나갔다가 식사 때가 되면 집에 와서 혼자 밥 한 술 뜨고, 좀 쉬었다가 나가고, 손님이 없으면 나무 그늘 아래서 다른 택시기사들과 차 한 잔 나누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누가 만나자고 하면 얼싸 좋다 달려가고 하면서 구실만 있으면 쉰다.
볼 일 다 보고 늦게 나가서 일찍 들어오며 태업 아닌 태업을 하는 식으로 하기 싫은 일을 슬슬 하니 돈이고, 의욕이고, 책임감이고 멀어질 것은 당연하다.
일을 한다고 나가서 한적한 비밀스런 곳에 차를 파킹해 놓고 한 판 벌리거나 어디 놀러 가서 늦게 들어 와 맞벌이하는 아내를 속 썩이는 골치 아픈 운전기사가 아닌 것은 천만다행(千萬多幸)이지만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일하기를 싫어하면 뭘 먹고 살려는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요즈음 P의 태도가 돌변했다.
집 주변에서 통 볼 수가 없다.
오가면서 보면 그가 일하러 나가는 시간은 새벽이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늦은 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추측해보건대 느슨했던 허리띠와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열심히 뛰는 모드로 변경된 것으로서 무슨 중대한 변화가 있은 것으로 추측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렇게 하라고 성화여도 들은 대꾸도 안 하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여 돈을 더 벌려고 착실하게 일을 하는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 같다.
만사태평(萬事太平)이더니 갑자기 왜 그렇게 부지런해졌는지 궁금하다.
어디다 땅을 샀나?
아들 장가보내려고 그러나?
사고를 당했나?
집안에 무슨 우환이 있나?
뭔지는 모르지만 누구든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무의시적으로 털어내듯이 급하면 다 하게 돼 있다.
반대로 나처럼 안 하게도 돼 있다.
전 같으면 마구잡이 쇼핑이었다.
마트든 백화점이든 들려 필요한 거 있으면 주머니 사정이고 뭐고 앞뒤 안 따지고 다 들고 왔다.
지금은 정반대로 알뜰 쇼핑이다.
잘 가지도 않지만 가게 되면 꼭 필요한 것인지 다 시 한 번 생각하고 값도 따지다 보면 안 들고 빈손으로 나온다.
그렇게 위축될 것은 아닌데다가 주이 짠다고 살로 가는 것도 아니지만 콩이야 팥이냐 안 따지던 것도 일정한 수입이 넉넉할 때 얘기지 수입이 부실하니 망설여지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상황에 따라 적응하게 돼 있는 것이다.
잘 대응해야 한다.
유연하게 잘 대처하면 인생이 즐겁게 성공적일 테지만 그렇지 못 하면 내내 허덕이다가 비참한 실패를 맞게 될 것이다.
평생직장 시절 월급날이었던 25일에 변한 자화상(自畵像)을 둘러보았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