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사장님의 자당 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고 성모병원에 갔다.
어느 장례식장을 가도 그렇지만 성모병원에 가면 맘이 더 숙연해 진다.
우리 성당의 병원이라는 푸근함과 함께 아부지와 엄니에 대한 사랑을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 계실 때 데보라를 주축으로 하여 우리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던 환자 보호자 대기실 앞을 지날 때면 면회 시간만 되면 가족들을 찾으시던 눈이 번쩍거리던 아부지의 모습이 떠오르고, 어떤 병원이든 모시고 다녀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셨지만 결국은 마지막 가시느라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아무 것도 모르신 채 병원에 모셨던 창백한 얼굴의 엄니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움과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 무의식적으로 성호를 긋고 아부지와 엄니와 종길 형,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시라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전부다.
오늘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장례식장 쪽으로 올라가면서 늘 하던 대로 기도를 드리면서 이 불쌍한 사람을 용서해달라고 청하였다.
그 때 장례식장 입구에서 여자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장례식장에서는 자주 들을 수 있는 비통한 울음소리인데 오늘은 더 크고 애절했다.
운전하며 풀었던 양복 윗저고리 단추를 잠그고 천천히 걸어갔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차가운 날씨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인지 모르지만 비통해 하는 그 여인과 가신 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좀 떨어져서 보니 아직 상복도 입지 않은 초로의 여인이 비틀거리며 장례식장 벽을 붙잡고 우리 막내 불쌍해서 어쩌느냐며 통곡을 했다.
그 옆에서는 또 다른 가족인 듯한 여자 아이가 그 여인을 부축하며 함께 울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아직은 더 살아야 할 젊은 사람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하여 불쌍하게 운명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에는 장례식장 직원 복장을 한 늙수레한 남자가 그 들 옆에 서서 안타깝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본인인지 확인해야 하니 진정하시고 영안실로 가자며 안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사무적인 절차를 진행자는 소리가 들릴 리 없을 것이다.
벽을 붙잡고 하는 통곡은 그치지 않았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바로 옆의 장례식장 자동문을 통하여 오가고 있었지만 그 행객들이나 통곡하는 사람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별개로 보였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슬픈 일인 것은 분명했다.
차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 옆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 편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께서 데려 가신 영혼에게 평안함을 주시고 이승에서 슬퍼하는 저들에게도 용기를 주시라고 주모경을 받쳤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몰라도 아부지와 엄니는 오늘 불려 가신 영혼을 잘 돌봐주셔야 한다고 부탁드렸다.
작년 봄 엄니가 돌아가셨을 때 당신 아들도 그랬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좋은 세상 좀 더 사시다 가실 것이지 왜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느냐고 원망도 했고, 불쌍한 우리 엄니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라고 하느님의 자식으로 매달리기도 했지만 엄니를 잃은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어 그저 눈물만 흘렸었다.
천수(天壽)를 다 하신 호상이니 그만 편히 보내드리라는 위로를 받던 엄니에 대해서도 자식으로서 슬픔을 견딜 수가 없었거늘 막내 동생을 보낸 내 나이 또래의 저 여인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곡의 벽을 붙잡고 밤새워 울었다고 하듯이 누가 오는지 가는 지도 모르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울며 불러봐도 대답 없는 가엾은 동생인 것이다.
한 참을 서서 그 여인과 슬픔을 같이 했다.
내 의지대로는 할 것이 없는 꿈길을 걷는 것 같았다.
나도 가야 할 길이 있는데 마냥 꿈길에서 헤맬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본래 가려던 곳으로 가 문상을 했다.
자손이 번성한 유 사장님 자당 빈소는 비교적 평온했다.
한 2년 지병으로 고생하시다가 구순의 연세로 돌아가신 망인(亡人)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빈소에 문상 후에 손자 상주와 마주 앉아 물 한 잔씩을 나누며 고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 공감하는 것들이지만 이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벽이 확연히 구분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느님의 품에 안긴 이후로는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미약한 우리 인간들이 알 수 없는 것이니 다 당신께 맡기지만 이승에서 저승의 벽을 넘어가는 것은 인간 영역에서의 슬픈 이별인 것이다.
가시는 분도 남아있는 사람들도 함께 넘고 지켜봐야 할 통곡의 벽이다.
빈소에서 일어서며 먼 길 떠나신 분 잘 모시라 정중하게 인사를 했더니 상주께서도 허리 굽혀 절을 하면서 고맙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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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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