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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결실이 좋아야 할 텐데

by Aphraates 2013. 10. 27.

 

일손을 놓으니까 많은 것이 달라진다.

활동력이 떨어지고 경제적으로 전 같지 않다.

생활이 단순해진 것이야 은퇴자라면 누구라도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일 테니 차치하고서라도 사사로운 것까지 들도 많이 달라진다.

 

잘 되면 충신이고 잘 못 되면 역적이라고 했다.

변화에 적응하느냐 못 하느냐도 자기 하기 나름인 거 같다.

세월이 더 가면 어떨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비교적 여유롭게 변화에 적응하며 무난하게 지내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 하였듯이 가복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숙하고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더 원숙해지고 폭이 넓어진다는 느낌이다.

 

보이는 것도 다르다.

 

도심지는 북새통으로 활황(活況)이다.

그런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엄청난 수고가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산적한 수많은 문제들을 부단히 해결하기 때문에 잘 돌아가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상권이 형성되어 있고 인파가 북적이는 그 곳은 공급자가 칼 휘두르는 갑이고 수요자가 을이다.

수요자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떡볶이 집에서 체면 차리며 우아하게 떡볶이 한 접시에 어묵 한 그릇 먹으려고 어물거리다가는 떡볶이 한 점 못 얻어먹고 주걱으로 얼굴을 얻어맞고 물러 날 수도 있다.

 

도심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딴 판이다.

파리 날리는 불황(不況)이다.

수십 년 장사해왔지만 차마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몇 년 상간으로 우습게 그리 됐고,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돌아가는 것 같지만 속은 썩어 뭉그러질 판이어서 조만간에 진로 결정을 새로이 해야 할 처지다.

상권이 무너진 그 곳은 공급자는 완연한 을이고 수요자는 슈퍼 갑이다.

라면 한 봉지 안 사도 지나가는 길 내내 이 것 좀 잡숴보시라며 잡채를 비롯한 많은 먹을 것들을 권하기 때문에 시식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곳곳에 개점휴업 수준인 가게가 적지 않다.

가게 규모로 보나 외형상으로 보나 이면적인 다른 거래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너무 썰렁하다.

바쁘게 살 때는 그런 것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불이 켜져 있고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문을 열어 놓은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들어가는 사람 하나 안 보이는 가게를 해서 어떻게 먹고 산다는 것인지 죽 해오던 것이니 문을 닫을 수 없어서 마지 못 해 한다고 하지만 너무 먼지만 날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처에 이상한 비공인 단체 간판들이 많다.

이름은 유력단체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거창한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올 것이 없는 허울뿐이다.

그렇다고 사기를 치는 것은 아니고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억지로 자부심을 부여하며 뭔가는 한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여러 사람이 매달려 작은 파이도 쪼개고 쪼개 나누는 것 같은 게 저렇게 해서 어떻게 밥 먹고 살겠나 하는 걱정이 된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장사가 안 되고 취직할 곳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일 수도 있을 텐데 자주 눈에 띤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일 것이다.

열길 땅을 파도 동전 한 닢 나온다고 하듯이 손에 잡히는 것 없이 몸과 맘난 피곤하게 하는 허당같은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 유통업을 하신다구요?

그러시다면 어디에서 어떤 브랜드를 갖고 하시는지......,

겉으로 내세우는 명색은 그렇지만 실은 저 건너편 골목길 끝자락에서 마구잡이 구멍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아, 교수님이시라고요?

그러시다면 어느 대학에서 무슨 과목을 강의하시는지......,

대외적인 명함 상으로는 OO교수이지만 실상은 한 주일 강의라고 해봐야 두세 시간에 불과한 대타 전문 시간강사입니다.

 

무엇이든 결실이 좋아야 할 텐데......,

말 못 할 사연의 대화가 자주 오가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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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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