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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당근 10개, 무 7개

by Aphraates 2014. 11. 10.

 

 

 

군기가 바짝 들은 훈련병들이 입소 며칠 후부터 받는 총기 예비 훈련인 논산훈련소의 PRI(피알아이:피가 나고, 알이 배고, 이가 갈리는) 교육에 비교할 것은 아니나 연만한 민간인들이 받기에는 녹녹치 않은 코스에 들어가신 형제님들을 환송하고, 격려하고, 환영하는데 조금 바쁜 주말과 주일이었다.

일이고 공부고 바쁘게 할 때 잘 되고, 끝나고 나면 보람도 있다고 하듯이 자발적인 의무감에서 하는 그 일들도 끝내고 나니 개운하고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교육 들어가신 잘 다녀오겠다고 겉으로 웃기는 하지만 얼떨결에 징집되어 들어가는 교육에 초조와 불만이 있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역시 무사히 마치고 나와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러면 그렇지 하는 안도의 한숨도 나왔다.

 

어제는 겨울 김장 사전 준비 차 미당 본가에 갔다가 당근과 무를 잔뜩 뽑아 트렁크가 작아 뒷좌석에 까지 한 차 싣고 왔다.

데보라가 형수님께 “형님, 당근과 무 좀 뽑아갈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형수님께서는 “겨울에 먹을 것은 벌써 다 땅에 묻었고, 김장할 것은 조금만 있으면 되니 많이 뽑아다가 아파트 사람들하고 나눠 먹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라고 하셨고, 형님께서는 한술 더 뜨시어 전부라고 뽑아가라 하셨다.

당근과 무를 가져가겠다고 하면 마다하시지 않을 거 같고, 몇몇 사람한테 주려는 속셈이 있어 커다란 비닐봉지를 많이 갖고 오긴 했으나 그렇게 많이 필요치는 않은데 밭에 얼마나 남았기에 다 가져가라고 하시는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밭 끝자락에 남아있는 당근과 무무를 보니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가까이 가서 뽑아 보니 보기와는 달리 엄청나게 많아 저걸 다 갖고 가려면 트럭을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정 표시와 맛보기로 한 봉지에 당근 3개와 당근 2개씩만 담겠다는 계산을 무 7개와 당근 10개로 수정했다.

밭에 남아있는 많은 당근과 무를 감안하면 더 많이 할 수도 있지만 뽑아서 운송하는데도 제약이 있고, 받는 사람들도 너무 많으면 처치 곤란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근과 무 보따리 받으실 분들은 이번 교육을 주선한 우리 갈마동 성당의 울뜨레아 간사님과 임원들이시다.

회원님들 모두가 깊은 관심과 참여가 있기에 매번 교육이 성황리에 끝나는 것이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를 리드하는 간사님과 임원들의 사랑과 정성이 특히 남달라 더욱더 잘 된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전 같으면 그런 것에 대한 고마움을 물질적인 것으로 표시하였지만 퇴직하고부터는 그럴 여력도 충분치 않은데다가 교육의 대선배로서 그러는 것이 모양새도 안 좋은 거 같아 이번에는 마음의 표시를 하기로 했다.

그게 바로 당근 10개와 무 7개다.

 

미당의 감나무 골 밭에 가서 당근과 무를 뽑아 비닐봉지에 담아 실었다.

힘들고 불편했다.

농사지은 거 그냥 갖다가 먹는 것도 이렇게 힘든 데 농사짓는 형님 내외분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고맙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작업하느라 손과 발에는 흙투성이고, 비닐봉지가 찢어지고 흙과 잎사귀들이 흩어져 차안은 난장판이었다.

승용차를 새로 산 지 6년차로 들어갔는데 이처럼 요란하고 지저분하게 짐을 실었던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내일 세차장에 맡겨 손세차를 하면 된다고 말은 했지만 좋은 차를 너무 짐 트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교육 관련 행사가 성황리에 끝났다.

어둠이 깔릴 때 함께 어우려저 뛰고 노래부르며 즐기다가 집에 오니 깜깜한 밤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식자재 마트에 들려 사온 커다란 비닐봉지로 아파트 가로등 아래서 당근과 무를 단단히 묵는 재작업을 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좀 늦게 도착한 간사님 내외분과 연락해 도킹을 하고, 거기에서 당근과 무 보따리를 넘기는 것으로 배달 작전은 끝이 났다.

데보라가 간사님 마나님께 고생하시는 분들 생각이 나서 이렇게 시골 형님이 주시는 것을 가져왔는데 번거롭게나 하지나 않나 모르겠다고 했다.

안나 자매님께서는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면서 운을 떼시고는 뭐든지 다 사 먹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싱싱한 신토불이 야채를 주시니 얼마나 좋고 감동적인지 모르겠고, 집에 들어갈 거 없이 싣고 가서 지금 당장 임원들에게 전해야겠다고 하며 좋아하셨다.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다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차원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우연히 이루어진 당근과 무 건이었다.

작은 일이지만 기뻤다.

돈으로 치면 얼마 안 되는 것이지만 함께 나누고 즐거워하는 것이 좋았고, 앞으로 다른 것에서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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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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