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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가방 끈

by Aphraates 2014. 11. 11.

나도 이제는 무디어지는가 보다.

옷차림부터가 많이 변했다.

아직까지도 반바지를 입거나 실내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것은 이웃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자신에 대해서도 결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정장이나 가지런한 차림 못지않게 간편한 옷차림으로 외출을 하는 것이 부쩍 늘었다.

 

레지오 활동으로 배당받은 쉬는 교유님들 댁에 성당 소식지인 주보(週報) 전달을 하러 가면서도 가장 편한 옷차림으로 나섰다.

새벽이나 밤도 아닌 낮에 그런 옷차림으로 나서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이례적인 데 그렇게 하고 싶어서 맘 닿는 대로 그리 했다.

 

닥다리 등산복 바지와 등산화, 이 십 여 년 전에 출장길에 들렸던 LA 할리우드가 인근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산 색 바랜 모자, 작년에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산 구르마 패션의 가을 파카, 데보라의 장갑을 착용했다.

또한 이 십 년 넘게 사용했어도 새 것처럼 싱싱하고 튼튼하고 대한전기학회(大韓電氣學會) 기념 검은 가방을 끈을 짧게 하여 앞가슴에 X자로 멨다.

한 손에는 주보 이십 여장이 든 파일을 들고, 한 손에는 묵주를 들고 기도를 하면서 갈마 아파트와 쌍룡 아파트와 갈마동 주택단지를 한 바퀴 돌기 위하여 나섰다.

 

주택단지 좁은 길을 가다가 맞은편에서 내려오시는 G 자매님을 만났다.

자주 뵙는 자매님이어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 방향으로 가려는 참인데 자매님께서 웃으면서 “회장님, 그 가방 끈 좀 느슨하게 매시지 영 답답하고 불편하게 보여요” 라고 하셨다.

일수꾼 같은 나의 그런 모습이 어색해 보였던 것 같다.

좋은 말씀을 해 주시는데 그냥 지나치면 예의가 아니었다.

나도 가방을 맨 채로 가방 끈을 늘이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그래요? 안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요? 가방 끈 길다고 공부 잘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가방 끈 길게 늘어트린다고 빨리 가서 많은 주보를 넣는 것도 아니지만 자매님이 알려주시니 좀 고쳐볼까요” 라고 답례를 하고는 다시 길을 갔다.

 

웬만큼 걸었는지 갈마 아파트에 도착할 때쯤에는 등에서 열이 좀 났다.

다시 가볍게 걸어가는 데 지난 주일에 교육장에서 김(金) 토마스 형제님이 “가방 끈이 짧아서 영 자신이 없었는데 옆에서들 도와주시어 잘 마쳤다” 면서 자랑스럽게 말하며 기분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그 때 속으로 그랬다.

예수님께서 학교를 다니셨다는 성경 말씀 못 봤고, 당신의 12 사도들도 책가방 들고 다녔다는 소리 못 들었다.

그 뿐이 아니다.

우리 몇 대 조(祖) 이상의 조상님들께서는 너무 오래 전이라서 확인할 길이 없어 당신들께서 옛날식이나마 학교를 나오셨는지 안 나오셨는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신식 교육이나 영어 공부를 하셨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그래도 다들 하실 일들을 잘들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만백성의 아버지가 되셨다.

우리 조상님들과 부모님들께서는 잘 사시어 최고 학부 이상을 나온 자식들을 두셨거나 학교는 안 나왔지만 나온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식들을 키우셨다.

 

가방 끈이 길고 짧은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그를 인정하면서 살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긴 가방 끈을 좋게 쓰지 못 하고, 짧은 가방 끈을 나쁘게 쓰려는 인간의 기본 심리를 제어하지 못하고 불쑥 나오게 하는 과오와 실수다.

그러므로 잘 살려고 하면 그 과오와 실수를 가급적이면 줄이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과오와 실수를 퍼팩트하게 100% 종식시켰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또한 우리들이다.

그러니 가방 끈이 길다고 우쭐할 것도 아니고, 가방 끈 짧다고 해서 주눅들 것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열심히 살면 복은 복 대로 들어오고, 화는 화 대로 나가게 돼 있으며 그게 곧 행복인 것이다.

 

가방 끈이 긴 사람들은 가방 끈이 짧은 사람들의 설움을 몰라서 그렇지 당해 보면 생각이 다를 것이라고 말하듯이 이런 얘기를 하는 자체가 가방 끈이 긴 축에 드는 사람들의 오만일지도 모르지만 가방 끈에 대해서 큰 의미를 안 둬도 되는  세상인 것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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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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