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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서대전 광장

by Aphraates 2014. 12. 13.

대전의 선화동, 대흥동, 은행동, 중동과 정동, 원동과 인동은 왕년에 깃발을 날리던 핵심 도심권이었다.

지금은 깡통구좌처럼 됐다.

둔산, 노은, 서남부권, 세종 등 상전벽해된 신 도심지가 여러 군데 생기면서 영원불멸처럼 식을 줄 모르고 빛나던 영화(榮華)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초라하고 쓸쓸한 구도심권이 됐다.

민관 합동으로 여기저기서 몸부림을 치고 있으니 지지부진이다.

침체를 벗어나 활성화내지는 현상유지라도 시키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다 빠져 나간 공동화(空洞化)된 상태에서 원상으로의 회복내지는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오늘도 빈 깡통 소리가 요란했다.

구도심권을 잘 안 가지만 어쩌다 갈 때 보면 서대전 광장은 항상 시위나 행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확성기 소리가 크다.

보급창 군사지역이었던 곳이 대규모 아파트 주택 단지로 개발되면서 넓게 남겨 놓은 서대전 광장은 녹지와 휴식 공간으로서 상당한 매력 포인트였을 거 같은데 허구한 날 그렇게 시끄러우니 인근 센트럴 시티 아파트 주민들이 스트레스 좀 받을 거 같다.

 

서대전역 근처에 있는 B 결혼 예식장에 다녀왔다.

언제 들어섰는지 대형 웨딩 빌딩이었다.

대학원 동문이자 동갑내기인 박(朴) 형 자혼이 있었다.

먼저 혼주와 신랑에게 결혼 축하 인사를 했다.

이어서 인근 백화점에 주차하느라고 좀 늦었다고 하시며 반갑게 오신 심(沈) 지도 교수님을 비롯한 몇몇 문하생들과 잠시 담소를 나누고는 식사를 함께 할 처지가 아닌 나는 발길을 돌렸다.

지하철을 타려고 서대전 네거리 역쪽으로 걸어오는데 서대전 광장에서 큰 판이 벌어졌는지 사람들 발걸음이 분주하고 확성기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는지는 모르지만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니 공무원 연금 개혁에 대해서 반대 시위를 하는 내용이었다.

참가자들이 전부 공직자일 것이다.

그런데도 전현(前現) 정권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최고 국정 책임자 이름을 거론하며 원색적인 성토를 하는 것이 이상했다.

한 배를 타고 한 솥 밥을 먹는 사람들끼리 어쩌다가 이렇게 척지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변에서 경광등을 켜고 대기하고 있는 동료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의 모습이 영 어색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위치에 있지 못 한 것이 아쉬웠다.

그저 지나가는 행객이자 관람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시기와 멸시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 터지는 사람 생각은 안 하고 무조건 점수가 크게 나여 구경꾼 입장에서는 즐겁다고 하는 못 된 심보는 아닌 것이다.

국외자로 무엇이 문제인지 이 쪽 저 쪽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한 때는 대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는 센트럴 빌딩 앞 양지에 서서 형형색색의 기가 나부끼고 원색의 조끼를 입고 앉아서 리더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원들을 보니 활력은 있었다.

이 추운 날에 그런 활력은 없어도 괜찮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오랜만에 보는 시위 현장이 그리 거부감이 큰 것은 아니었다.

 

햇볕은 그런 대로 견딜 만한데 바람은 세찼다.

이런 구경꺼리가 있는 줄 알았으면 두터운 외투라도 걸치고 나오는 것인데 날씨가 풀린 것 같아 양복만 입고 나왔더니 많이 썰렁했다.

추위를 피할 뭐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다 보니 인도 한 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아랫바지에 손을 넣고 어슬렁거리며 포장마차 앞으로 갔다.

‘초로의 부인이 호떡과 오뎅 국물을 팔고 있었다.

고소한 호떡 냄새와 구수한 오뎅 국물 냄새가 어우려저 구미를 당겼다.

예식장의 뷔페 식사를 안 하고 혼자 거리에서 포장마차를 찾은 것은 모양새가 좀 그렇지만 데모대 구경꺼리도 아직 볼 것이 남아 있는 것 같고, 몸도 녹일 겸 해서 호떡을 먹으면서 오뎅 국물을 국자로 떠서 먹었다.

맛도 좋고, 몸이 금세 훈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 삭막한 모습이지만 초라하게 느껴지면서도 정감이 가는 오십 년 전의 그림이 그려졌다.

충렬탑 밑에서 하숙하면서 가끔 나와서 옛 성보극장과 MBC 앞의 호떡집에서 사 먹던 호떡과 오뎅 국물의 추억이 소록소록 다가와 저절로 즐거운 웃음이 나왔다.

 

성모 학교 건너편을 바라보며 한 참을 그러고 있자 아줌마가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게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라서 그런다며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자 자기는 그보다는 조금 아랫 나이지만 없이 살아도 정이 흘러넘치는 살기 좋은 그 때 그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다시 그나저나 연금 때문에 시위가 잦을 거 같은데 원만한 선에서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원래 여기서 장사를 하셨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줌마가 “웬걸요” 하더니 다른 데서 장사를 하는데 벌이가 시원치가 않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오면 좀 나으려나 하는 희망을 갖고 온 것인데 신통치 않다고 했다.

 

시위 현장 그림이 애처롭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한 쪽에서는 우리 기득권 박탈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면서 돈 을 못 내놓겠다고 아우성인데 다른 쪽에서는 그런 거는 우리가 모르는 일이니 우선 당장 우리들이 먹고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니냐고 악착같이 벌어야겠다고 하니 적대 적은 아니지만 극대 극은 되는 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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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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