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이던가......,
정치권에서 귀태 논쟁이 있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태어났다는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한 의미의 논쟁이었는데 인간이 인위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공과(功過)에 대해서 공방을 벌일 수는 있지만 인간 영역의 범위를 넘는 생사(生死) 문제 자체를 거론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람은 다 제 밥그릇은 제가 갖고 태어나고, 누구라도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으므로 밥그릇을 깬다거나 장점이든 단점이든 한 곳으로 몰아붙이면 어떤 형태로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체험한 바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 그런 불협화음의 소용돌이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내가 갖지 못한 남의 떡이 좋아 보인다고 해서 그를 탐내거나 모방하려고 한다면 분명 탈이 나게 돼 있다.
그런 탈 없이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 생긴 대로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내가 좀 손해일지라도 남한테 피해를 안 주고 세상 흐름에 따라 순응하는 것은 절대로 패하거나 잃는 것이 아님을 자각하는 것은 지혜롭게 잘 사는 길이다.
지자연(地資硏)의 이(李) 아우님 자혼 축하를 서울 예식장으로 떠나는 버스 앞에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과 내일과 모레의 일정을 생각해 봤다.
길이 얼어붙어 유리알처럼 반들반들하여 엉금엉금 기는 와중에 대충 헤아려본 것이지만 이번에도 일감이 많이 밀렸다는 것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 자빠지려고 조심하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밀린 일들을 소화해내려면 바쁘게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그런 것이었고, 고관대작을 흉내 내는 것도 아니건만 왜 이리 일감이 많으냐는 걱정도 됐다.
이러다가 무슨 탈이라도 나는 것이 아닌 생각과 함께 언뜻 고사성어인 한단학보(邯鄲學步) 즉,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다리가 찢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 사자성어의 교훈은 욕심 부리지 말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라는 것이다.
허영심이 가득한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려는 좋은 가르침이다.
중단없이 가르치지만 실천이 잘 안 되니까 가문의 영광 내지는 위기의 주체로서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제 파악 못 하고 살면서 손가락질을 받도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렇게 남들한테 폐해를 주며 불편하게 살 바에야 차라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입신양명의 길을 도모할 것이지 왜 나돌아 다니면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단학보의 미달(未達)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무슨 한이 맺히고 얼마나 굶주렸기에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다고 검은 돌이 하얀 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가 둘 되는 것도 아닌데 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해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려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몸은 예 있으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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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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