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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잡탕

by Aphraates 2014. 12. 19.

입맛은 단출하고 촌스러우면서도 좀 까다로운 편이다.

반면에 음식과 요리에 대해서는 잠뱅이다.

입맛에 맞는 것 한두 가지만 있으면 식탁은 풍족하다.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자급자족의 요리 기회가 있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라면을 끓인다거나 국수를 삶아서 김치와 고추장에 비비는 수준이다.

 

다급하면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도 한 가 있다.

잡탕(雜湯)이다.

김치, 남은 반찬, 고기나 통조림 생선, 물을 넣고 팔팔 끓이면서 짜지 않게 간만 맞추면 시장이 반찬이라는 기가 막힌 찌개를 만들어 내는데 배고파서 허겁지겁 먹어보면 내가 끓였지만 참 잘 끓였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시장 끼가 가시거나 집에 돌아 온 데보라가 점검을 하고 나서는 내가 만든 잡탕이 식탁에 올라온 적은 거의 없는 것이 내 요리의 한계인데 골고루 넣고 잡탕을 만들면 이상야릇하나 그런 대로 맛이 나고 영야 면에서 볼 때도 골고루 섭취할 수 있어 보양식이라고 해도 될 듯 하다.

 

예전에는 잡탕이나 짬뽕 같은 것은 먹지 말라고 했었다.

되나 안 되나 다 넣고 버무리는 이미지가 안 좋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남들이 먹는 것이나 식당 쇼윈도에 샘플로 비치해 놓은 것을 보면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여도 실상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한다고 그랬다.

지금이야 그런 식으로 했다가는 식당 망하는 것은 하루아침일 테니 그럴 리가 없겠지만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 남은 재료나 손님상에서 남은 반찬을 쓸어다가 다 집어넣은 것이 그 음식들이니 맛과 영양을 떠나서 게림칙하다고 했었다.

 

나는 잡탕 같은 사람이거나 잡탕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잡탕밥은 좋아한다.

지금도 일 년이면 중국집에 가서 몇 차례는 먹는다.

얼큰하고 시원한 것이 입맛에 맞는다.

그리고 청양 칠갑산 자락 깡촌에서 대학이 두 개나 있는 교육도시로 이름난 공주(公州)로 나와 처음 먹었을 때 세상에 이런 것도 있었나 하고 감탄하던 추억어린 음식이기도 하다.

 

추억어린 잡탕밥이다.

어린 나이에 정든 집을 떠나 타향 객지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 공주 차부 뒤(중동 : 현재 국민은행 건너편)에서 먹던 잡탕밥에 대한 향수가 아직도 남아있다.

공주에 가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 짬뽕밥 집 근처를 둘러본다.

만두와 찐빵과 짜장면과 우동을 함께 팔던 항상 창가에 김이 서려있던 작고 초라한 식당이었다.

지금은 그 곳 전체가 변하여 식당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고, 그 집이 있다 해도 한 그릇 훌떡 해 치우고도 아쉬워서 숟가락을 빨던 그 때 그 시절처럼 맛있게 먹을 수도 없겠지만 돌아보면서 추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잡탕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즐겁다.

 

연일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우리 집 주방장께서 오늘은 대모님이 준 둬 주먹 되는 엿과 설탕을 녹여 잡탕 강정 오꼬시(おこし : 밥풀과자)를 만든다고 해서 오랫동안 냉장고 에 묵어있던 견과류와 마른 육포와 어패류를 가위로 잘게 잘라줬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얼마 안 되는 것 같더니 해 놓고 보니 한 바가지가 됐고, 가위질 한 손이 와락와락한다.

어떤 것을 만들어봐야 한두 개 먹는 정도다.

누군가에게는 전해준다거나 다음 어떤 행사에 쓰이게 될 것이지만 좋은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든 잡탕 강정이 맛이 없다면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이번에도 특이한 작품이 하나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주방 보조로서 역할을 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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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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