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는 대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던가 뒷짐 지고 걷는다.
여간해서는 손을 내휘두르며 급하게 걷는 경우가 없다.
그래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습관처럼 됐다.
좋아한다고 마르고 닳도록 초지일관으로 그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본은 유지해도 상황과 여건에 따라 걷는 모습이 변한다.
얼마 전부터는 걷는 자세를 이전과는 정반대로 바꿨다.
큰 모션은 아니지만 손을 내 놓고 움직여가면서 걷는다.
손시런 계절이 되면 손을 호주머니에 넣는 것이 아니라 장갑을 낀다.
획기적인 변화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주변의 충고에 따라 낙상방지(落傷防止) 자세로 일대 전환을 한 것이다.
은지 할머니는 꼬리뼈가 부러져 그 때문에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영식이 어머니는 엉덩이뼈가 부러져서 제대로 거동을 못 하시고, 유진이 할머니는 골반이 함몰되어 쾌차하시지 못 하고 병원 신세이시고, 훈이 할머니는 다리가 절단되어 두문불출이시고......, 친지들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늦으막에 고생하신다고 함께 걱정하면서도 속으로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지금 의술이 어떤 의술인가?
못 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발달 돼 있다.
한데 아무리 잘 붙지 않는 연노하신 분들의 뼈라고 하지만 골절된 것을 고치지 못 하고 자연 치료되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지인한테 내 생각을 얘기하면서 그를 치료하는 것이 그리 어려우냐고 물었었다.
그러자 전문가인 그가 웃으면서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고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안 넘어지고 안 부러지도록 특히 골다공증이 있는 노인 여자분 들은 조심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 할머니들한테는 다른 어떤 질병보다도 무서운 것이 낙상하여 골상을 입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도 그 반열에 입문하였으니 넘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걷는 자세를 바꿨고 데보라한테도 장갑을 끼고 다니라고 일렀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우성 당장 안 당하고 감이 무디어지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깔보다가 된통 당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실패 사례를 소개한다.
이 미당(美堂) 선생이 오늘 새벽산책을 하다가 당했다.
갈마 공원에 가면 내리막 경사길 에 철도 침목을 깔은 곳이 몇 군데 있다.
국민생활관과 운동장과 산자락을 코스로 한 바퀴 돌고는 농구장 옆의 철도 침목 길을 내려가려는 찰나였다.
위험을 직시하였다.
방심은 금물이라고 하면서 이런 곳은 미끄러울 테니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맘을 다져 먹었다.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전과를 기록한 데보라가 이런 곳 뿐 아니라 평범한 길도 조심을 해야 할 텐데 하면서 등산화를 신은 오른 발로 슬슬 문질러보다가 어이쿠 소리를 내며 꽈당 하고 말았다.
체중이 쏠렸는지 미끄러져 뒤로 벌렁 넘어진 것이다.
낙법을 칠 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엉덩이와 머리와 손이 동시에 침목 위에 미끄러지면서 몇 미터 아래로 밀려 났다.
두터운 모자를 쓰고 거기에 모자가 달린 두툼한 파카와 솜바지 비슷한 패딩 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낙상 충격은 별 게 아니었는데 가장 힘이 들어갔던 손은 두터운 스키 장갑을 낀 것하고는 무관하게 시근거리고 아픈 것이 커다란 돌덩이한테 짓눌렸다가 풀려난 것 같았다.
이른 새벽이니 누가 보는 사람은 없어 창피하지는 않았지만 저만큼에서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 보이지도 않고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빙판에서 낙상한 것 같다며 걱정과 재미있다는 눈초리를 보내는 데 가만히 있으면 예의도 아니고, 넘어지면 자기 엉덩이 아픈 것은 차치하고 누가 보나 안 보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뚱보 아가씨처럼 무의식적으로 반응을 했다.
“어허, 그거 참 미끄럽네. 하마타면 큰일 날 뻔 했구먼” 하는 것으로 자빠지긴 했지만 무사하다는 것을 공원 만방에 선포하여 다른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으로 주민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데 공헌한 것이다.
겉으로는 그랬지만 속으로는 억세게 재수 없다는 의미의 깔보다가 큰코다친다, 장난치다 애 밴다, 개구리한테 뭐 물렸다는 말들이 생각났다.
최전방 임진강 휴전선 지역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하는데 지원 나온 공병중대장이 육중한 쇠로 만들어진 지뢰대비 인명 보호용 신을 신고 폭풍지뢰를 고양이가 발로 쥐 건드리며 장난하듯이 하다가 터져서 중상을 입고 후송돼 가던 모습도 떠올랐다.
또한 아픈 것은 둘째 치고 어떤 변명을 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했다.
중대장 제가 무슨 무쇠 발이라고 지뢰를 툭툭 치며 장난을 했다는 것인지 죽을라고 환장했다고 호통을 치며 대노하던 대대장이 그랬듯이 조금 부어 오른 손에 파스를 붙여주는 데 괜찮다고 안심은 시키겠지만 그러기에 걸을 때 조심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혀를 차는 데보라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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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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