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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웬 등산씩이나

by Aphraates 2015. 1. 6.

나도 한다면 합니다.

절대로 말리지 마십시오.

 

출전을 앞둔 장군의 비장한 각오인 것 같다.

조국과 가문의 일대 명운이 걸린 전쟁에 나서기에 앞서 만백성한테 천명한 것이니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한마디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요지부동일 것 같아도 촌철살인의 한 마디에 고개를 수그릴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훤히 보이는 실례(實例)도 있다.

 

올 해부터는 1주일에 화요일과 금요일을 통하여 한두 번은 대전(大田) 근교를 위주로 하여 산행을 가기로 했다.

건강과 체력도 보강하고, 시간과 돈도 유용하게 쓰고, 체력과 산행 수준이 향상이 되면 히말리아와 안데스와 뉴질랜드의 세계적인 트래킹 코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그런 계획을 잡은 것이다.

대충 아는 산들이지만 검색을 해봤다.

대전은 넓은 뜰이라는 뜻인 “한밭”만큼이나 사방팔방으로 산이 많은데 산악인들이 올린 자료에는 대전 인근 명산 103선(選)도 있었다.

바로 옆 봉우리로 있지만 산 이름이 다른 것처럼 103 봉 중에는 중첩되는 산들도 있을 테지만 그 정도라면 상당히 많은 산이었다.

일 년에 산행 가능한 주(週)를 50주로 잡으면 1주일에 두 산씩 1년 내내 돌아야 동네 산을 다 도는 폭이 되는 셈이어서 실현 가능성을 안 따지고 타이트하게 등산 계획을 잡았다.

산행 시간은 아침 일찍 출발하여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느긋하게 산행을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점심은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과 간식을 위주로 하되 맛있거나 특색 있는 것이 있으면 사 먹기도 하자고 했다.

교통수단은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되 부득이한 경우에는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자고 했다.

 

오늘은 등산 계획의 첫 날이었다.

그런데 일이 있었다.

어제 오정동 농수산 시장에서 사온 두 박스의 노란 배추로 김치를 담가야 한다고 해서 오늘은 그 일을 하고 내일 가자고 미뤘다.

아침 일찍 산행을 하지 않으면 저녁 미사와 레지오에 지장이 있으니 이미 어제부터 오늘의 등산은 물 건너 간 것이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불가능한 현실에 닥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김치 담그는 일에 사역병으로 동원되어 봉사를 했다.

뒷마무리로 청소기를 밀고 다니면서 집안 곳곳을 깔끔하게 청소까지 다 해 주는 것을 넘어 베란다의 항아리들을 쓰기 편리하게 정돈하는 것까지 서비스로 해 줬다.

 

김치 작업이 다 끝나고는 등산장비를 꺼내다 놓고 점검했다.

내일 등산을 가기 위해서였다.

평상시 산책할 때 쓰던 등산용품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두고 잘 안 쓰던 배낭, 스틱, 보온 도시락과 보온 병, 그걸 쓰는 경지까지는 안 가겠지만 비상용으로는 갖고 가야 할 아이젠 등등을 꺼내 놓고 손질하면서 이상이 없는지 요리저리 심도 있이 살펴봤다.

 

등산장비 점검을 다 끝내고는 서재로 들어오면서 “내일은 구봉산 행인데 버스 노선과 산의 상태를 검색해봐야겠네” 라고 하였더니 데보라가 다가와서는 “뭐 하시는가 했더니 등산장비 점검하셨구먼요. 서방님의 원대한 계획의 일환이니 무조건 환영하지만 왜 하필이면 내일인가요?” 라고 하여 무슨 말인지 잘 몰라 멍하고 있자니 말을 이어갔다.

내일부터 잠시 주춤하던 추위가 몰려와 소한 추위로 이어진다는데 허구한 날 내내 안 하던 것을 왜 이런 악조건에 하려고 그러냐면서 평지에 다니면서도 넘어져 손이 아프다고 하는데 험악한 날씨에 험준한 산에 올라갈 수 있겠느냐며 어제 있었던 공원에서의 낙상사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일리가 있었다.

등산을 안 가려고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날도 많은데 등산도 잘 못 하면서 왜 이리 안 좋아지는 날씨에 떠나려고 하는 것인지 무리인 것은 분명했다.

옳은 소리를 콕콕 하는데 반박하고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늘어놓았던 등산장비를 베란다로 내 놓고는 주방을 향해 “맞아, 자네 말이 맞네. 서두를 일은 아니니 금요 산행으로 미루지 뭐. 이러다가 등산계획이 다 도로 아미타불 되고 열정도 다 식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네. 맘이라도 변치 말아야 할 텐데” 라고 하였더니 누가 쫓아오거나 누가 떠미는 것도 아닌데 즐거운 맘으로 순리대로 하자고 했다.

 

“나도 한다면 합니다” 라는 야망차고 의욕적으로 세운 김(金) 작가의 계획이 “웬 등산씩이나” 하는 장(張) 반려자의 작은 현실 문제 멘트 하나로 좌절내지는 유보되는 아픔을 겪는 오후 시간이었지만 심각하지는 않았다.

솜털같이 많은 날들까지는 아니지만 가장 효과적인 시간들을 보낼 수 있는 여유는 있는 날들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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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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