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 양동이 물지게 질은 소싯적에 좀 해 봤지만 많이 하지는 않았다.
우리들이 어마들을 졸졸 따라다니던 아주 어렸을 적에는 엄마들이 뒷동산 아래에 있는 동네 공동 옹달샘에 가서 물을 항아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날라다 먹었고, 우리들이 제법 성장하여 엄마 일을 도와드릴 때쯤에는 집집마다 우물이나 수도(펌프)를 설치하여 식수를 조달하였기 때문에 그 무거운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나르는 엄마들의 수고는 덜게 되었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개인 우물을 가질 형편이 못 되는 농촌의 일부 가난한 집이나 도시 산동네 같은데서 는 다른 집 우물이나 급수차 또는 공동 수도에서 물을 받아 양철 양동지게로 날라다 쓰곤 했다.
그 시절 시절에는 어려운 줄을 몰랐는데 나중에는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들리곤 했다.
그러고 보면 양철 양동이도 얼마동안인 줄은 모르지만 역할을 충분히 핸 내면서도 한 많은 역정을 거쳐 온 것인데 오늘은 그게 곧 나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모든 질병은 70%는 자연치유가 가능하다니 어디가 좀 불편하더라도 병원이나 약국으로 쪼르르 달려가지 말고 어지간하면 참아보자고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던 것이 엊그제다.
그러나 지금은 괜히 고집부리다가 병 키우지 말고 어디가 좀 이상한 듯 하면 만사 제치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새 것이고 튼튼하여 발로 차도 쭈그러지지도 않고, 내동댕이쳐도 구멍이 안 나던 양철 양동이도 몇 년 연식이 더 해가면 실 구멍이 나기 시작하여 큰 구멍이 되고 결국에는 밑이 쑥 빠져 아무리 때워봐야 못 쓰게 된다는 실증시험을 하는 것 같은 것이 나를 비롯한 노땅들의 몸인 것 같았다.
어제는 속이 불편하여 병원에 갔다 젊은 의사한테 한 방 먹었다.
“선생님,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자연치유되 않고 안 낫는 것이지요?” 라고 농담 비슷하게 말했더니 “그 거야 젊으실 때 이야기지요. 지금연세로는 만만하게 이길 것이 별로 없을 테니 조심하시는 것이 상책입니다. 조금 안 좋다 하면 얼른 오시고, 정밀 검사 기간도 넘었으니 예약하시고 가세요”라는 따끔한 충고를 하셨다.
약호가 죽어서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서글펐다.
걱정 없던 것들이 걱정거리로 등장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걱정거리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텐데 그를 어찌 극복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오리 새끼들도 아닌데 한 겨울에 맨발로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재잘거리는 젊은 아이들을 보니 낡아서 줄줄 새는 양동이가 윤기 나는 새 양동이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