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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펜치

by Aphraates 2016. 2. 19.

펜치(Penchi)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요긴하게 쓰인다.

가정에서는 가정상비약처럼 한 두 자루는 보유하고 있고, 공장에서는 공구 통마다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고, 혹시 야외에서 쓸 일이 있을지 몰라 차량 공구 통에 싣고 다니는 펜치는 맥가이버 칼 이상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쓰일 어디서고 훈계라고 하면 어렸을 적부터 그래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그림자도 안 밟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먼저 떠오른다.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하찮아 보이지만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한 소중한 공구가 어쩌다가 “펜치 놓는다”는 이지매나 왕따 라는 표현의 안 좋은 소리의 주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어불성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아마도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므로 서 파생되는 후유증을 경각심 차원에서 그렇게 말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어른 말씀 잘 듣고, 백의의 민족임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소리와 바람을 함께 받는 어린이들인데......,

그런 가르침을 주는 어른들은 과연 잘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잘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자기들이 하지 못 한 것을 후세들이 해 주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으로 그런 것을 피력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입으로만 해서 안 된 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얘기해야 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겠으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한다.

당첨될 확률은 거의 제로이지만 그래도 미력하나마 안 사는 것보다는 사는 편이 확률 있는 것이라며 줄 서서 사는 복권과 비슷한 거 같다.

 

1년 농사를 짓고 나서 자체 품평회(品評會)를 가졌다.

농작물을 늘어놓고 한 것은 아니다.

단원들이 가까운 칼국수 집에 모여서 두부와 오징어 두루치기, 녹두전과 해물 파전을 놓고 한 주회(酒會)였다.

이 사람은 속이 불편하여 어제 구역회에 이어 오늘 모임에서도 안주만 조금 축내는 역할을 했지만 오가는 대화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여러 가지 주제(主題)가 오갔다.

공동체 이야기에서부터 가정사까지 자양했다.

시국에 대한 것은 없었다.

관심이 없는 것인지, 대화 가치를 못 느꼈는지 모르지만 시국 이야기가 나오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것이 뻔한데 누구도 그 얘기를 하지 않으시어 다행이었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고 맨 나중에 나온 것은 어렵게 시험에 합격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임용되어 본격적으로 출근하여 업무에 들어간 아이에 관한 것이었다.

잘 됐고, 잘 하기 바란다는 축하의 인사 다음에 이야기가 이어졌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그 특수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얘기였다.

마침 그 분야에서 계시다가 정년퇴임한 두 분 단원이 게시여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을 듣고 더욱더 흥미로웠다.

얘기를 듣다보니 거기도 경쟁하는 삶의 현장이니 큰 줄기로 볼 때 여타 조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말한 대로 그렇게 사명감을 갖고 지금을 일구어낸 것인데 그 공을 치하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잘 하고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져 이루어진 것처럼 여기며 한 것이 뭐 있느냐고 기성세대를 몰아붙이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서운함도 있었다.

 

고질적인 갈등의 단면이 있다는 것에는 씁쓸하기도 했다.

현직에서 물러나고 보니 관리 층에 있던 소수의 사람들은 피 관리 층에 있던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펜치 당한다는 것이 그 것이었다.

변명인지 모르지만 현직에 있을 때는 관리 층이 안 된 것이 서운했는데 퇴직을 하고 왕따 당하는 관리 층을 보니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는 소리를 듣던 관리 층이 안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말씀에 놀랍기도 했고, 어디를 가나 그 놈의 승진 때문에 문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층층시하에서 오르고 또 올라도 눈초리 치켜 올리는 시어머니는 있고, 추락하고 추락해도 등 두드려 주는 시아버지는 있기 마련이다.

또한 그 속에서 갈등과 분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 아는 사실이니 그런 것을 인정은 하면서도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면서 상생과 공생의 관계 모드를 이어가는 것이 살기 좋은 세상인 것인데......,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것은 화합과 통합의 의미로 보기 곤란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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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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