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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컵밥

by Aphraates 2020. 8. 19.

컵밥.

편의점이나 대형 상점과 슈퍼 또는, 식자재 마트 진열장에서 본다.

같이 진열된 햇반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도 드라마 소품으로 또는, 광고로 본다.

그러나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 과()가 아니기 때문에 인정하지도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언제까지 그리 독야청청할 수는 없는지라 세상 흐름에 섞여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노량진역 일대 : 여의도, 한강교, 본동, 고시촌, 수산시장, 장승백이, 상도동, 흑석동 중앙대학교 ,

컵밥=노량진이다.

그리고 금순 사촌 누이가 중첩된다.

가난한 칠갑산 자락 농촌의 딸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서울로 가 노량진역 옆 철로 공터에서 밥장사하며 팔순이 넘는 지금까지 살고 계신 누이다.

미당 선생도 한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눈물겨운 서울살이를 했지만 누이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어쩌다가 노량진 누이 집에 가서 누이가 챙겨주는 따뜻한 고봉밥을 먹을 때는 배고프고 고달픈 타향살이의 설움보다는 허리 한 번제대로 펴지 못하고 사는 누이가 안쓰러워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곤 했다.

세상이 좋아지고, 노량진역과 사육신 묘역 일대가 고시촌으로 변모하면서 간드랑간드랑 갖고 있던 땅에 쨍하고 햇볕이 들었다.

버려진 같던 땅이 제법 큰 돈이 되어 고생 끝인 누이가 되는가 했는데 호사다마인지 이번에는 집안에 이런저런 우환이 들어 지지리 복도 없는 누이라 안타까워하고 있다.

 

옛날을 생각해서라도 언제 한 번 노량진에 가서 누이와 마주 앉아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오붓한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러질 못하고 마음만 갖고 지내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잊히지 않는 길이다.

중앙대학교 넘어가는 노량진 본동 언덕배기 판잣집 골목길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 같은데 누이를 비롯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눈물겹고 정이 넘치는 모습은 여전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추가된 게 있다면 청운의 꿈을 안고 독서실에서 고시촌이라는 이름으로 변한 거기에서 한 끼니 식사의 대명사처럼 된 컵밥이다.

 

컵밥은 생각한 것만으로도 맘이 짠하다.

바쁘게 사느라고 뜨거운 물을 붜 후다닥 먹어 치우는 컵라면은 그리 초라하게 생각되진 않는데 컵밥은 다르다.

노숙 아닌 노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홈리스(Home Less, 노숙자)들이 찾는다는 밥이면서도 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컵밥은 눈물어린 빵 이상일 것이다.

 

너무 측은하게 여길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이 다 다르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권장할 컵밥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컵밥을 먹을 수도 있으니 너무 맘 아파할 개 아니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다.

 

오늘의 메뉴

오늘 점심은 박() 대리님과 발전소 구내 편의점에서 컵밥을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함바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문을 닫고 연락이 안 된 지 며칠 됐단다.

소문에 의하면 그 식당을 이용하던 큰손님인 몇몇 중소기업이 부도를 맞아 함께 위기에 처한 것 같단다.

불쌍한 일이다.

함바를 잘 하면 돈을 벌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란다.

장부에 적어 놓고 먹은 밥값을 못 받아 야반도주하듯이 줄행랑치는 사람들과 함께 곤경에 처하는 일도 있단다.

먹고 살고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선 길이다.

알캉달캉하며 간신히 유지해 나가던 사람이 그런 불미스러운 어려움에 부닥치는 것은 세상 불공평한 것이지만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니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점심때가 되었는데 밥이 안 왔다.

어찌할 것인지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편의점에 가서 샌드위치든 뭐든 사서 한 끼 때우자고 했다.

그러자 편의점 구경도 할 겸 해서 편의점에 가 컵밥을 골라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자고 하여 개축하느라고 두 달간 휴업에 들어간 식당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매장이 널찍했고, 쉴 수 있는 테이블도 상당했고, 가슴이 써늘할 정도로 시원했다.

발전소 직원들을 포함하여 수천 명의 작업자들이 출입하기 때문에 식사 때가 되면 도시락을 시켜 먹거나 밖으로 나가는 차들 때문에 분주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리만큼 주변이 조용했다.

다들 점심을 어떻게 해결하기에 이렇게 조용한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나중에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뭘 드실 거냐고 물었다.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난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알아서 고르라 하고는 뒤따라가면서 편의점 안을 둘러보았다.

편의점 식단이 정해졌다.

2+1인 낙지 볶음 밥 3, 역시 2+1인 생수 3, 2개들이 소시지 한 봉지, 눈에 띄는 적은 삼각 김밥이었다.

계산하고는 한적한 탁자에 앉아서 먹으며 편의점의 궁금한 것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더블 띠동갑인 박 대리님이어서 그런지 묻고 대답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다.

 

다 먹고 일어서면서 영수증을 보더니 4,500원인 구내식당 값이나 6,000원인 배달 도시락값보다도 훨씬 더 비싸다며 16,000이 나왔다 웃었다.

의외였다.

만 원 정도 될 거라 예상했었다.

잘 먹었다고 배를 두드릴 정도도 아닌데 그 돈이라니 편의점이라는 브랜드값을 톡톡히 하는 것 같았다.

개축한 구내 식당 오픈하는 것이 1주일 남았다.

한 주의 점심 식사는 어찌할 것인지 궁금했는데 바로 해결이 됐다.

수십 개는 될 것 같은 안내 메뉴판을 보고 몇 가지를 골라 편의점 도시락을 주문한 것이다.

 

머나먼 남쪽 마을에서 처음 먹어본 컵밥이었다.

맛과 질이야 그렇다 치고, 값이 만만치 않았다.

근근한 패스트 푸드의 대명사처럼 된 컵라면과 함께 생각만 해도 맘이 찡했는데 그렇게 불쌍한 컵밥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혼자 짝사랑한 것처럼 컵밥을 혼자 측은하게 여긴 것은 중대한 착각이자 오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수성찬에 비하면 초라하다는 소리를 아니 들을 수 없지만 실제로 먹어보니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1952년 미군 수저

그나저나 컵밥 숟가락이 영 시원찮다.

자꾸 접히는 숟가락을 들어 보이며 이거 영 불편하구먼. 수저라도 하나 갖고 다녀야겠네라고 하던 농담처럼 집 어디엔가 있을 옛날 미군들이 쓰던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커다란 미군 수저를 찾아 가방에 들고 다니며 컵밥을 먹을 기회가 있으면 호주머니에 숨겨 갖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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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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