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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사번 社番

by Aphraates 2020. 11. 8.

요금이 기본요금 정도 밖에 안 나오는 것이 태반인 국선 전화는 물론이고 잠시라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모바일까지도 번호가 가물가물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는 애들이고 머리 회전이 잘 안 되는 어른들이고 마찬가지란다.

전화번호를 숫자로 적거나 불러주면서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단박에 자기네 거라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내 번호구만 누굴 바보로 아느냐며 겸연쩍게 웃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니다.

그렇게 2단에서 9단까지 숨도 안 쉬고 달달 외던 구구단처럼 안 해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굳이 외우고 기억해내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자기의 신체 일부분을 놓고도 그게 뭔지 가물가물한 것인데 그 역시 장단점이 있을 테니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 될 것이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묻기만 하면 바로 탁 튀어 나오는 숫자 번호가 있다.

 

생년월일이 들어가는 주민등록번호가 있다.

수시로 사용하고, 평생을 써 온 자기 주민등록번호를 잊었다면 그 것은 치매 수준의 이상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에 관계없는 사람들은 예외다.

 

다음은 군번이다.

지휘관이나 상급자가 지휘봉으로 하급자 배를 푹 찌르며 군번하면 예 이병 김OO, 12450XXX" 이라고 팍 튀어 나온다.

고문관들도 군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큰소리로 외웠는데 지금은 예외가 있을 수 있단다.

윗사람한테 혼나면 곧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하여 하소연하고, 외동이의 지원 사격 요청을 받은 엄마는 곧바로 부대로 달려와 문제를 해결해 줘는 일부 신식 군대 병사가 그에 해당된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사번(社番)이다.

회사나 관련시설 또는, 인터넷으로 뭔가 하려고 할 때 사번을 물으면 ", 저는 김OO,이고요 사번은 7711XXXX입니다하고 자연스럽게 나온다.

물론 어제 입사했다가 다른 데서 대우를 좀 좋게 해주겠다고 하면 오늘 바로 사표를 내는 일부 신세대는 예외다.

하지만 평생직장으로 알고 살아오다 정년퇴임한 사람 같으면 생사고락을 같이 한 그 사번을 쉽게 잊지 않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어제는 미당 선생의 평생직장 입사일 이었다.

사번이 말해주듯이 1977117일에 한국 전력에 입사하였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퇴사일이 2012331일이라는 것은 가물가물한 것과는 달리 입사일은 입에 밸 정도로 명확하게 기억한다.

입사일에 비하면 35년 후인 최근의 일이 퇴사일이지만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갓난 엄니가 돌아가신 해이고, 3월 퇴직자이기에 시스템적으로 퇴사일이 기억되는 것이다.

 

그냥 지나쳐서 아쉬웠다.

어제 같은 날에는 대전에 거주하시는 다른 입사 동기들과 코로나 퇴치 소맥 폭탄이라도 날려야 했다.

생각은 했지만 바람을 잡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뤘다.

지난주에 금요일과 토요일 연타 석을 날렸다가 고생을 했다.

이번 주에도 정림동 쌍둥이 보러 갔다가 김장 전야제 소맥 폭탄 놀이까지 하고 온 터에 다시 연타 석을 날렸다가는 오늘 성당 사목회가 끝난 후에 떠나는 삼천포 길이 어려울 것 같아 자제를 한 것이다.

 

2012년 대전(大田) 출신 퇴직자들의 동기 모임(12)은 가끔 갖는다.

퇴직하고 나면 OB들이 만나는 것은 드물다.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데 그런 모임이 있어 교류하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입사 동기와 승격 동기는 퇴직 동기와는 다르다.

대전/충남북/전북 일원에 지역구 입사 동기들이 상당하지만 오래 전에 한두 번 만난 것이 전부였고, 전국구 모임인 승격 동기 모임(37)은 처음 몇 년 간 활발하게 하다가 흐지부지 되어 어디서 동기를 만나면 반가워하는 정도다.

 

행동하는 양심이 없으면 다 소용 없다.

유보하였다가 다음에 세게 행동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조만간에 어제 못 한 7711로 시작하는 사번을 가진 지역구 OB들과 은은하게 소맥폭탄 몇 개 날리도록 주선해봤으면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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