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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우아하게

by Aphraates 2021. 1. 17.

옥계동을 지나 남대전 요금소로 향하면서 라디오 채널을 찾았다.

그런데 주파수가 잘 맞아 음질이 좋은 어떤 방송인가에서 재미난 가사의 노래가 들렸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고, 가사 내용이나 음률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진행자가 노래가 끝난 다음에 누구누구의 우아하게라고 언급을 했는데 그게 노래 제목인지 그룹 이름인지 감이 안 잡혔다.

운행 중이라서 메모를 할 수도 없었다.

내려 가면 어떤 노래인지 찾아봐야겠다면서 가사에 나오는 지퍼, 망신, 우아하게만 떠 올렸다.

그런데 막상 삼천포에 도착해서는 우아하게를 잊어버렸다.

 

몇몇 단어를 입력하면서 사정없이 인터넷을 뒤졌다.

눈깜땜감으로 검색을 한 것이다.

한데 참 착하기도 하고 용한 인터넷이기도 하다.

인터넷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다.

막 두드렸더니 지가 안 나오고는 못 배겼는지 십 여분 만에 결국은 우아하게란 말과 노래에 관한 기사가 나타났다.

잃어버린 지갑을 되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J201543일 자의 문화면 기사였다.

6년 전의 노래인데 이제야 듣다니 그게 한계인지 아니면, 그나마도 다행인지 모르겠다.

요상한 이름의 밴드 이름도 그랬다.

 

아마도이자람밴드

타이틀은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12> 아마도이자람밴드 우아하게’ - 당신의 실연송은 무엇인가요?> 였다.

시간을 두고 내용을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12>아마도이자람밴드 ‘우아하게’ - 당신의 ‘실연송’은 무엇인가요?

[중앙일보]입력 2015.04.03 13:54수정 2015.08.07 00:52

 

저는 오늘 당신과 헤어졌습니다. 헤어지자고 말한 건 저지만, 그렇게 만든 건 당신입니다. 한동안 멍한 상태가 계속됐습니다. 침대 위에 달팽이처럼 누웠습니다. 달팽이처럼 꿈틀거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 눈물이 미련인지 후련함인지 그리움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중앙일보 문화부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페이스북 댓글 이벤트
당신의 ‘실연송’을 추천한 뒤, 재치있게 한 줄로 이유 달기

배게가 축축해질 정도로 울었더니 배가 고픕니다. 이 죽일 놈의 식욕. 실연 당하면 살이 빠진다는데, 그건 대학가면 살이 빠진다는 것과 똑같은 억측입니다. 사자 머리를 하고 주방으로 나갑니다. 라면을 끓입니다. 계란도 풀고 파도 썰어 넣었습니다. 먹습니다. 후루룩. 또 눈물이 납니다. 면발이 너무 뜨겁습니다. 혓바닥이 데였습니다. 남자친구는 라면을 참 잘 끓였습니다. 그가 그립다기보다 그의 라면이 그립습니다. 저도 울고 라면도 웁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동네 친구 두 명이 저를 위로하겠다며 집 앞으로 찾아왔습니다. 사자 머리에 간신히 물을 축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소주를 먹기로 했습니다. 실연에는 소주입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걔 마음에 안 들었어.”
“이제 너에게 수많은 가능성이 열린거야.”
친구들이 열심히 위로를 합니다. 쥐어짜는 것도 느껴지지만 고맙습니다. 사랑은 영원할 수 없으나 우정은 영원할 수 있습니다. 술이 취하니 슬슬 부아가 치밉니다.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우아하게’(2013)가 떠오릅니다.

우아하게 행복을 바라지 않을게요
그다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아요
하는 일 다 잘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람 만나라는 새빨간 거짓말 내 입으로 내뱉진 않겠어요
날 버리고 간사람 자꾸 궁금한 사람
생각할수록 얄미운 사람

우린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까요. 우리의 사랑은 모세의 기적처럼 시작했으나 흔하디 흔한 연애의 종말로 기록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먼저 식은 이유를 누구도 설명할 수 없기에 답답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을 증오하는 일 뿐입니다. 이자람은 이렇게 증오합니다

고상하게 말없이 보내주지 않을래요
기회 닿는 대로 많이 험담하고 싶어요
어디 가서 넘어졌으면 좋겠기도 하네요
잘 보이려는 사람 앞에서 지퍼라도 열렸으면
속이 시원하기도 하겠네요

특히 앞지퍼는 꼭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술잔을 더 돌리니 또 다시 눈물이 납니다. “소주가 너무 달아. 어흐흐흑”. 감정 기복이 죽을 씁니다. 의문, 분노, 슬픔, 좌절, 억지 희망 그리고 다시 의문이 이어집니다. 이 감정의 쳇바퀴를 몇 번 정도 더 굴려야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요. 다시 분노의 강도를 높힙니다.

길가다가 보도블럭에 넘어져라
커피 타다 바지에 쏟아져라
술 취해서 집에 가는 길 까먹어라
못된 여자 만나서 쩔쩔매라
엊그제 산 비싼 잠바 찢어져라
새로 산 스마트폰 망가져라
지하철에서 꼰대한테 혼나라

다음 날 부운 눈으로 출근을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을 그리워했다, 미워했다를 반복합니다. 당신의 모든 것이 내 몸에 삼겹살 냄새처럼 끈덕지게 들러 붙어있습니다. 페브리즈라도 뿌려 떼어내고 싶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좀 더 담담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요. 이별에는 내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자람은 이렇게 노래를 마무리합니다.

이리 저리 망신 주는 상상을 해도
하나도 시원하지 않아
이리 저리 망신 주는 상상을 해도
하나도 시원하지 않아

우아한 이별이란 가능한 것일까요? 저는 생각합니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는 없습니다. 그저 견디고, 견딜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것이니까요. 외롭습니다. 당신이 곁에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당신을 떼어내는 일이 온전히 내 몫이기에 외롭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잘 지내고 있나요.

발로차 기자 elegant@joongang.co.k*r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입니다. 이 칼럼은 익명으로 게재됩니다. 필자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중 한 명입니다. 다양한 문화 콘텐트로 연애를 다루는 칼럼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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