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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지갑

by Aphraates 2021. 2. 16.

반반 세기 25년여 동안 사용하던 지갑을 바꿨다.

대전 용전동 사옥 근무 때에 동료가 해외여행을 다녀온 기념품으로 선물 받은 악어(?) 반지갑을 죽 써 왔다.

그런데 엊그제 보니 뒤쪽이 헤어져 구멍이 났다.

돈이 그 구멍으로 빠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귀중한 금품을 보관하여서 다니는 지갑인데 찜찜하여 만지면서 당겨보니 쭉 찢어졌다.

다른 것으로 바꿀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의 돈을 꼭 붙잡고 다니면서 평생 주인한테 무료 봉사를 해 줘 정이 들 대로 든 귀한 물건인 수명이 다했다고 내치기는 싫었다.

 

그러나 다 헤진 것을 그대로 쓰거나 옛날 양말 깁듯이 하여 사용할 수는 없었다.

장식장 서랍에 있는 다른 지갑을 찾아봤다.

전에 여러 개 있었던 것 같은데 반지갑은 없고 폐기된 카드를 보관하는 지갑이 몇 개 있었다.

그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그 속에 있던 낡은 카드들을 다른 지갑으로 옮기고는 헌 반지갑에 있던 살림살이들을 새 지갑으로 옮겼다.

살림살이라고 해봐야 단출했다.

주거래 은행 신용 카드 2, 내외 운전면허증 2, 주민등록증, 자동차 보험 연락처와 연락 방법이 적힌 카드, 회사 본인 명함 5, 5-일만-오천-천 원짜리 몇 장이 전부였다.

 

지갑을 바꾸는데 맘이 좋진 않았다.

웬만하면 옛것을 고집하고 싶었다.

봉투 봉투 열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들어가면 안 나오는 할머니 속곳 고쟁이 주머니처럼 돈을 지키던 반지갑이 되게 하려고 했던 맘이 다치는 기분이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지갑 정리하는 것을 보고는 데보라가 새것 하나 사다 주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내 금고지기였는데 그만 쓰려니 아쉽고, 반지갑은 없고 지갑만 있어서 그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려면 좀 어색하긴 하겠지만 있는 것 쓰고 말겠다고 하였더니 웃었다.

혹시 몰라서 반지갑 가격이 얼마나 가나 하고 전화기를 열어 확인해보니 00만 대의 고가품과 0만 원 대의 저가품들이 죽 나왔다.

고가품은 브랜드값인지 너무 비싼 것 같았다.

내 돈을 보관하는 의미를 부여하면 모르지만 그저 지갑이라는 것만 생각한다면 좀 과했다.

그런 비싼 지갑을 써야 만 돈이 굳고 품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 지갑을 정리하고는 헌 반지갑을 정돈했다.

속을 깨끗하게 털어내고, 티슈로 골고루 닦아서 베란다 건조대에 집게로 물려 널었다.

살균하여 기념으로 골동품 함에 넣어 보관하고 싶어서였다.

생명력이 있어 움직이는 지갑은 아니지만 내 살림을 지탱해준 고마운 지갑인데 수명이 다했다고 해서 아무 데나 버리는 것은 양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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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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