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장에서 OB 후배를 만났다.
물론 같은 수험생 입장이었다.
그 시험에 도전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시험장에서 만나다니 도전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배정된 시험 교실을 확인하다 보니 아는 전·현직 이름 몇이 있었다.
대전에서는 시험장이 한 곳인데 수험생 전체 인원이 적었다.
그도 코로나 영향인 것 같았다.
인원이 적어 시험실 안내 벽보에 적혀있는 이름 중에 지인 이름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후배한테 언제 입문했는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하자 했더니 선배님은 한 개 갖고 계시면 되지 왜 또 시험장에 나오셨냐며 웃었다.
글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데 보고 돌아서면 가물가물하여 어려움이 많다고 하였더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수긍이 됐다.
공부하는 대로 쏙쏙 들어가 안 나오면 머리 복잡하여 제대로 못 살 것이다.
삼천포로 내려오는데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만나서 반가웠다는 것이었다.
반갑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험장에서 아는 사람이 있어도 긴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악수하고 포옹하다 보면 머리가 흐트러질 수도 있어서 간단한 인사말로 대신하고 다음 언제 한번 만나자는 빈말로 끝이다.
웬만큼 가깝고 돈독한 사이가 아니라면 시험장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 전부이지 다른 목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시험 잘 봤느냐고 물었더니 소설을 썼다고 했다.
자신 있게 쓰질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공학도에게 문학도가 된다는 것은 아니 될 말이다.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지식이 높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여러 번의 응시 경력이 있어도 매번 어디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하던 엉뚱한 문제가 나온다.
모르고 어렵더라도 잘 풀어야 한다.
문제는 출제자 맘이지 응시자 맘이 아니다.
응시자가 출제자 의도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 하긴 하나 모르는 문제를 선택하게 되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
물론 완전 허구가 아니라 최대한 사실에 근거하여 자기 지식과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다.
출제자는 기본 및 전문 지식에 최신 트랜드를 고려하여 문제를 내고, 응시자는 거기에 답해야 하는 구조이니 둘의 생각이 같을 수가 없다.
출제자 처지에서는 기술사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며 평이한 문제라는 생각으로 문제를 낼 수도 있지만 응시자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깜깜이로 소설을 쓸 수도 있다.
기술사 시험은 첫 시간 13문 중 10개 문제를 선택하고, 둘째 시간부터 넷째 시간까지는 6문 중에서 4문을 선택하여 100분에 걸쳐 풀어내야 한다.
문제지는 대개 A4 용지 한 장이다.
반면에 답은 A4 용지 14면을 채워야 한다.
머리가 쥐 난다는 소리 나오는 고난도 시험이다.
그래도 잘들 한다.
매회 10% 내외의 합격자가 나온다.
응시자 경험으로 볼 때 문제의 출제 패턴은 비슷하다.
6문 중에서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것 2문, 다소 불완전하게 쓸 수 있는 것 2문, 생뚱맞은 것 2문 정도로 출제가 된다.
문제 구성 비율이 질서정연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제대로 아는 문제 하나에 나머지는 모르거나 풀어내기 곤란해 뒤죽박죽되어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당황하지 말고 머릿속에 있는 거 다 끄집어내야 한다.
강행군하는 시험에 머리가 히팅되어 무거울지라도 어떻게든 젖먹던 힘까지 다 써야 한다.
모르는 문제를 푸는데 소설가적 상상도 동원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하는 것이다.
그게 시험이다.
자기 입맛에 맞고, 자기 공부한 대로 문제가 나왔으면 다 기술사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다르다.
합격 점수를 봐도 참 짜다.
합격자들 점수를 보면 합격 점수인 평균 60점 언저리다.
언뜻 생각하면 높은 점수가 아닌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받기 어려운 점수다.
채점도 정확하고 정교하단다.
주관식 논술로서 답이 명확한 객관식보다는 위험성이 적을지 모르지만 답 안에 들어갈 것은 다 들어가야 한다.
열심히 한 흔적이 보인다고 해서 정상을 참작하여 좋은 점수를 주는 일은 없단다.
소설을 쓸지라도 수험생 처지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100점 만점에 비록 10점을 받을지라도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모르는 데 정곡을 찌를 수가 없다.
그럴 때는 헛발질이라도 해야 한다.
그게 가만히 있거나 백지로 내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있는 말 없는 말 다 동원하여 소설을 쓰기도 해야 하는 것이 주관식 문제를 풀어내는 수험생의 길이자 운명이다.
미당 선생도 그랬고, 다른 사람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후배가 소설을 썼다는데 나무랄 수는 없었다.
아픈 만큼 성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실력을 쌓아 가고, 꾸준히 하다 보면 그를 쌓이고 인정을 받아 합격하는 것이라며 중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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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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