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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불안하지 않으세요

by Aphraates 2021. 9. 15.

연구원(硏究員)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오래전이다.

당시에 외국 과학 기술계 인사들과의 미팅이 많았다.

주로 전기 기술에 관한 미팅이었다.

선진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비용을 부담하여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기술을 전수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미팅을 추진하는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전문가들 지위가 생각보다 초라하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거창한 직함을 가진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Irregular Worker)이었다.

그땐 임시직이라 불렀고, 지금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우리 정서와는 잘 안 맞았다.

일본을 비롯한 동양계에서는 평생직장 개념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놰놔라 하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불안정한 처지에 고정적인 대우를 못 받는 임시직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뒤로 그 오해는 풀렸다.

서양 선진국에서의 비정규직의 속내를 알고 보니 괜찮은 제도였다.

 

인력 운영방식이 이랬다.

프로젝트 하나가 나온다.

팀장을 위시하여 분야별 전문가들이 한 팀을 이뤄 정해진 기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팀을 해체한다.

팀원은 각자 개인으로 돌아간다.

휴식 시간을 가지며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자기를 연마하고 실력을 충전시켜 상품 가치를 높이며 대기한다.

여유 있게 대기하다가 다음 프로젝트가 생기면 다시 투입되고 해체하는 식으로 근로를 이어가는 선진적인 제도였다.

팀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임금도 충분하여 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근무 안 하는 동안에도 잘 된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일정 수준 임금을 받으면서 자기 역량을 키워 고용과 피고용에 불안 요소가 없었다.

전문가로 인정받고 충분한 보상을 받기 때문에 승진에 연연할 필요도 없었을 뿐 아니라 지학혈연 같은 것에 매여 걱정할 것도 없는 제도였다.

 

우리도 그 제도를 도입하여 운용했다.

기초가 부실하여 앞서가는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수직적인 조직 형태를 벗어나 수평적이 조직인 팀제를 도입하여 확장하는 추세였고, 고용도 유연성을 발휘하여 채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하여 노사 갈등의 주요 쟁점이 되기도 했다.

소사장제도나 워크아웃 같은 공식적인 하청 제도와 함께 의사소통이 유연한 팀 제도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착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극복해야 할 장애 요인들이 많다.

환경과 여건이 잘 안 맞는다.

사회보장제도가 아직 미흡하고, 고용의 안정성이 열악하고, 취업이나 가업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풍토가 굳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돈은 좀 적더라도 안정적인 공직 계통으로 나가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서울 한강 변의 노량진 고시촌이 열기가 식지 않고 뜨거운 것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다음

모모 인사가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 됐지 뭐가 문제냐고 했다가 세상 물정 모른다는 비판을 받으며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가치관이 그런지 아니면, 실언이거나 곡해인지 모르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열망하며 재수에 재수를 거듭하는 취준생 청춘들한테 환영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때다.

어느 날인가 이탈리아에서 머리 허연 기술자가 왔다.

도입한 장비에 이상이 있어서 A/S를 하러 온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처음 운용하는 장비인데 그를 수리하러 왔다니 대단한 인물인 것 같아 깍듯하게 대우했다.

그런데 자세히 알고 보니 그 정도로 출중한 기술자는 아니었다.

학력도 중졸과 고졸 사이이고, 그리 똑똑해 보이지도 않았다.

어릴 적부터 그 분야에서 일해 세계적인 기술자가 됐다고 했다.

직위도 없는 임시직이었다.

실상을 알고 나니 어리둥절하여 통역하는 직원을 통하여 불안하지 않으세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제스처를 취하고 웃으면서 바로 나온 대답은 노 프라브럼(No Problem, 문제없다)이었다.

우리하고는 많이 달랐다.

 

그게 30년 전의 일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적어도 30년은 있어야 하고, 자꾸 발전하는 그들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일 거라고 하던 때였다.

지금이야 그런 우려를 종식하고 이미 따라잡아 앞서가 있거나 바로 따라잡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는 어찌 됐을까.

30년 전에 선진국이던 나라들은 그 고용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는 아직도 어떤 제도가 좋고 우리에게 적합한지 규정하기도 곤란할 정도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아 생각해볼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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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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