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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빤히 보인다

by Aphraates 2021. 9. 14.

빤히 보인다.

걸어가는 길이니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훤히 보인다.

숙명이다.

앞으로도 계속 가야 한다.

좋고 안 좋고를 가릴 형편이 아니다.

순탄하든 험난하든 가야 한다.

 

그 길을 잠시 멈추니 이상하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보이는 절벽이라던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면 아예 생각을 안 할 텐데 빤히 보이는데도 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리니 허망하고 착잡하다.

뭔가에 갇혀 자포자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게 뭐지.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 고난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며 발상의 전환과 함께 노선을 변경해보라고 권하며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더 답답한 것은 본인이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요리조리 길을 잘 찾아다니는 것에 익숙할 것 같으면 벌써 그랬을 것이다.

그러지 못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단언할 수는 없다.

변화에 능수능란한 선수라면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것은 예사일 것이고, 말을 갈아타는 것도 식은 죽 먹기일 테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런 사람 보고 자꾸 다른 길을 모색해보라고 하니 속 터지는 것이다.

 

빤히 보인다, 다음

평생 걸어온 길을 바꿔 색다른 길을 가는 것도 능력이다.

재주가 용한 것이다.

그러나 능력과 재주가 잘 쓰이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가야 할 길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부진부진 나서는 것은 뭔지 모르겠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을 즐기는 모험가 기질도 아닌 것 같은데 무리하여 많은 부작용이 뒤따르는 것 같다.

오판과 실수가 아닌지 뒤돌아보고 가던 길로 되돌아가는 자성의 계기도 있었을 텐데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가버린 것 같다.

 

결말이 걱정스럽다.

깃발을 든 기수야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뭔지 제대로 모르고 깃발을 따라가던 사람들은 어찌 되는가.

뭔가 홀린 듯한 기분에 내가 왜 이럴까 하는 노래를 부를지도 모른다.

고생 끝에 낙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승부수를 걸고 나섰겠지만 고생이 비럭질한 것을 넘어 패가망신으로 끝날 소지도 다분한데 왜 그런 무리수를 둔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스스로 택한 길이다.

과실도 본인 몫이다.

이 과실(果實)이든 저 과실(過失)이든 가져가야 한다.

변신도 자유다.

순행이나 역행의 또 다른 변신을 하든지, 기억 밖으로 영영 사라지든지, 절치부심하여 다음을 기대하든지 본인의 몫이다.

 

사돈 남 말 할 것 없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고 답답해하는 사람들도 좀 결이 다르긴 하나 답답하기는 매마찬가지다.

답답하지 않도록 자세를 잘 잡아야 한다.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듯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선 안 된다.

그렇다고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외길을 고집하는 것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으니 참고와 숙고를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맞이하는 삼천포의 초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한려수도 바닷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사무실 문을 열어 놓고 팡팡 돌아가는 발전소를 올려다본다.

일 년 좀 넘으면 끝날 것 같던 일이 많이도 늘어졌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몸과 맘이니 무탈하다고 봐도 괜찮을 것이다.

길이 빤히 보인다.

겨울에 삼천포를 떠나 대전 집으로 귀향하면 어찌할 것이며, 그 뒤로는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불확실성이 있으나 빤히 보이는 저 건너가 그리 편안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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