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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이거 왜 이렇지

by Aphraates 2021. 9. 25.

향촌 O 아우님이 요즈음 살림살이하시느라 바쁘단다.

제수씨가 낙상으로 인하여 발을 다쳐 거동이 불편하시어 투잡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전업주부가 발을 다쳐 잘 움직이질 못하니 수발을 들어야 하고, 웬만한 것은 다 해결해야 하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어렵다고 할 것까지는 아니겠으나 짜증은 좀 날 것이다.

하는 일이 추석 대목 같은 명절에 가장 바쁠 때다.

바깥일도 정신없는데 안 해보던 집안 살림까지 하려니 어려움이 많을 텐데 나름대로 잘 돼 나가는 것 같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어려움을 통하여 부부의 정을 더욱더 애틋하고 돈독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부부 일심동체로 움직여도 속 터지는 일이 있다.

살림살이가 어설퍼 땀 흘리며 꾸려 가는 바깥양반도 그렇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말썽만 부리는 듯한 것이 못마땅한 안양반도 그럴 것이다.

설거지하던 행주를 집어 던지며 못 하겠다고 하는 바깥양반도, 그를 바라보며 맞불 작전으로 수건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지만 참고 살살 달래는 안양반도 애로사항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손가락 까딱거리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해도 잘 안 되는 것이 답답한데 바깥양반이 오히려 안 한다고 성질을 내면 강대강으로 나서서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차라리 어미가 대신 가겠다는 식으로 튀고 나서면 다른 데서 더 크게 튀는 소리가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는 소리를 흘려들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 집에 위문차 다녀온 데보라가 들어오자마자 막 웃었다.

국 하나 끓이려면 얼마나 부산을 떨고, 얼마 동안을 연습했는데도 할 줄을 모르고 뭐가 어딘 있는 줄 몰라 몇 가지를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면서 속 터진다고 안양반이 그러더란다.

오다가 살림살이를 안고 들어오는 바깥양반을 만났는데 해도 해도 뭐가 그리 할 것이 많고 어설픈지 못할 일이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절더란다.

어느 집에서도 있을 수 있는 가벼운 부부 충돌이다.

이해가 되고 상상이 되는 그림이었다.

부부유별에 각자의 영역이 다른데 비전문가가 다른 분야를 하려니 잘 되기를 바라는 자체가 욕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재미난 아우님네 이야기다.

하지만 사돈 남 말할 거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삼천포 양반들도 다르지 않다.

 

환절기가 되다 보니 콧물이 나온다.

코가 아플 정도로 닦아내느라 책상 앞에 놓인 각 휴지통이 비었다.

잘못하면 줄줄 흘러내릴지도 몰라 휴지 다 썼는데 다른 거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책상 밑에 있지 않으냐는 소리에 고개를 숙여 보니 바로 발 앞에 있었다.

거기까진 그런대로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보이는 대로 집어 올려 휴지통 위의 개방 선을 떼어내고 휴지 빼내는 구멍을 만들어야 하는데 잘 안 됐다.

힘줘서 억지로 떼다 보니 잘 안 되고 지저분하게 됐다.

전에 보니 잘 됐고, 데보라는 잘도 하던데 안 되는 것이 이상했다.

대형회사 유수 제품인데 이런 것도 불량품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추석에 청양과 예산과 대전에서 가져온 재료로 가마솥 반 정도는 되는 대형 냄비에 된장국을 끓여 식혀 소단위로 포장하던 데보라한테 이거 왜 이렇지하면서 너덜거리는 휴지통을 보여주며 물었다.

포장 작업을 잠시 멈추고 돌아서서 휴지통을 요리조리 보더니 파안대소를 하면서 휴지통을 거꾸로 들어 보이며 여기를 떼야지 왜 엉뚱한 바닥을 뜯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살짝만 건드려도 쉽게 열리는 정면을 개봉한 것이 아니라 굳게 잠겨진 바닥을 억지로 뜯어낸 것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일을 멍청하게 한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스러웠다.

너덜거리는 바닥을 여무리고 정면을 간단하게 떼어 낸 휴지통을 받아 들자 아이고, 두야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국 하나를 끓이려도 몇 가지를 물어보고 몇 가지를 찾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115동의 모습이 떠올랐다.

 

별스러운 일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깊이 낙심할 것은 없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나의 우스운 이야기이지 흠이 되거나 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보스러운 웃음거리가 삶의 양념이나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작은 일로 짜그락거리며 서로 존재감을 인정하고 고마워하는 관계라면 더욱더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승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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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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