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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인플레이션

by Aphraates 2021. 9. 29.

산재(産災)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5년 동안 관련 업무를 하면서 10여 건의 산재 처리를 했다.

불행한 일이어서 하고 싶지 않았다으나 책임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당시에는 내년 2022년 초부터 시행 예정인 중대 재해 처벌법 같은 엄격한 법이 없었다.

산재가 발생하면 좀 느슨한 기존 규정에 따라 보상을 했다.

보상은 대부분 비슷한 수준으로 되었다.

인명 손상을 경제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옳지 않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전기 재해로 인한 산재 보상금은 거의 비슷했다.

보상금은 정부의 산재 보상법에 따른 보상금, 소속 회사의 공제조합에서 나오는 보조금, 경영주나 소속 단체 조직원들이 도의적인 차원에 따라 전달하는 위로금을 합하여 책정했다.

총액은 한 자릿수 하위권인 O 억 원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예외가 있기도 했다.

민사 소송을 하면 보상금을 좀 더 받았다.

그러나 별 실익이 없어 소송하는 것을 꺼렸다.

전문 법조브로커들이 붙어서 승소를 해봤자 소송비용으로 다 들어가 번거롭기만 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귀중한 사람 목숨을 놓고 재판을 벌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꺼리는 분위기였다.

재해자 측이 법을 잘 모르는 데다가 요즈음처럼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쉽지 않아 소송을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산재 보상금은 일시금과 분할금으로 구분된다.

산재 보상금액이 결정되면 분할하여 받을 것을 권유했다.

돈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돈이 보이면 별의별 사람이 다 나타난다.

나도 한 볼 테가 달라고 하는 것은 삭막한 지금이나 순박하던 그때나 다름이 없었다.

보상금이 나오면 생전 안 보이던 사돈에 팔촌까지 다 등장한다.

전쟁이었다.

경황없는 사이에 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보상금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배우자나 자식들이 제대로 가져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가기도 했다.

그래서 은밀한 코치를 하기도 했다.

보상금을 받는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 가족들한테 다가가 경험상으로 볼 때 분할 지급 받는 것이 좋더라고 귀띔해 줬다.

전문가이자 경험자인 코치를 받아들인 사람은 부족하나마 안정적인 돈 관리가 됐다.

반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시금으로 받은 사람은 얼마 못 가서 파탄을 맞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산재가 아프다.

20년 전의 일을 왜 끄집어내 아프게 하는가.

송곳으로 콕콕 자르는듯한 일이 벌어져서다.

 

사실이 아니라고 믿지만 50억 원이라는 산재 보상금 기사가 실렸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산재 보상금이 그렇게 인플레이션됐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월 급여가 이삼 백만 원이었다는 재해자가 근무 중에 이명인가 하는 재해를 당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런 정도는 평생을 달고 살기도 하는 그런 질환이다.

사무실 근무자가 중증 이상의 질병에 걸렸다는 것이 이상하다.

다른 뭔가가 있지 않고서야 그런 거액의 보상금이라는 것이 안 믿어진다.

 

산재 보상자들 허탈하겠다.

부족한 보상금에도 묵묵히 견디며 산재 제도를 인정하는 편이다.

그런데 상상을 초월하는 별도의 보상금을 받았다면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픈 정도가 아니라 복장 터질 일이다.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고 묵비권을 행사하지 하는 원망스러움도 있다.

코너에 몰리자 다급하게 해명하고 변명한다는 것이 숱한 사람들 염장 지르고 분노케 하는 것 같다.

 

천문학적인 돈을 가져갈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편을 들어도 적당해야 한다.

막대한 수익에서 그들 식으로 조금 떼어내어 준 것일 수도 있다며 얼토당토않은 진단으로 허탈해하는 수많은 사람 화나게 할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소상히 밝혀 옳고 그름을 판단 받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물의를 일으킨 잘못에 대한 반성이자 예의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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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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