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공부 잘하는 댁의 아이 학교는 어떻게 됐어요.
C) 서울대 OOO과 들어갔어요.
A) 아, 서울에 있는 대학. 무슨 대학이죠.
B) 아니에요, 진짜 서울대에요. 신림동에 있는 그 학교요.
A) 그렇군요.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 어딘가 갔다는 줄 알고. 잘했네요.
오래전에 셋이서 나눈 실화다.
미당 선생 시절에는 대학 이름을 안 붙이고 그냥 문리대(文理大)라면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을 일컫는 것이었고, 그냥 사학과(史學科)라고 하면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사학과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일류대로서의 명성이 자자했다.
이류로 분류하던 대학이나 삼류대를 분류한 여타 대학도 못 가는 실력이나 재력 미달 학생들은 종로구 동숭동에서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사 간 서울대학교는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니 서울대는 실력과 자부심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견물생심 수준이었다.
지방대가 어렵단다.
고사 직전이란 말까지 나온다.
만사형통은 요원하고 만사 불통의 모습만 자꾸 노출되고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학들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자잘한 문제들이 있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인구 절벽과 수도권 집중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포장을 바꿔보기도 하고, 내용물을 채워보기도 하고, 둘 다 획기적으로 변화를 시도해보지만 만사 불통이다.
아무래도 대학들이 구조조정과 손절매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시군(市郡) 단위로 대학이 들어서도 학생들이 밀려오던 시절을 생각하지 말고 학생 등록금과 재단 충당금과 정부 재정지원금을 인정사정 볼 거 없이 들어 뭐도 끌고 올 학생이 없는 데야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는 것이다.
“지방대 위기에 '개명' 나선 대학들…지역·종교 빼고 '국립' 강조” 라는 타이틀 기사가 와 닿는다.
귀향하는 추석 명절에 힘 빠지고 찬물 끼얹는 것 같은 기사이시지만 사실이 그런 걸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와중에 부침대(浮沈大)의 명암이 엇갈린다.
뜨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가라앉는 학교도 있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잘 이겨내야 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대학에도 난세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니 적자생존의 법칙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할 것 같다.
특정 대학이 도마 위에 올랐다.
좋은 의미에서이기도 하고, 안 좋은 의미에서도 그렇기도 하다.
주술이 정치판에 회자하더니 대학 작명이 풍성하기도 하다.
태평성대(太平成大), 서강학파(西江學派), 괄목홍대(刮目弘大), 참여연대(參與延大), 학수고대(鶴首高大), 등극경대(登極慶大), 부상중대(浮上中大), 승마이대(乘馬梨大), 망신국대(亡身國大)......,
역시 학문의 전당 아카데미답게 머리가 팡팡 잘 돌아간다.
극극서울(極極서울)이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천정부지로 정점에 오르는 그 학교 동문 많고, 끝없는 추락으로 땅속 깊이 들어가는 그 학교 동문도 많아 극과 극을 달리며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도 아주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극으로 달려가는 동문 이야기를 들어봐도 맞고, 남극으로 달려가는 동문 이야기를 들어봐도 맞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며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만 멍청해지는 것 같아 난감 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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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