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이라면 역시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했다.
인간의 성선설과 성악설을 설명하는데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아주 고약한 심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곳곳에 구경거리가 생겨난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하지만 거룩하게 맞이하는 대림주간(待臨週間)에 그런다는 것은 애석하다.
오시는 그 분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켜내야 하는 인간의 기본 도리도 아닌 것 같다.
이율배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더 잘 하지는 못할망정 회개하고 자숙하는 자세까지 범해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과 각오를 한다.
낄끼빠빠하는 자세를 견지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은 있는 것이라 여기고 싶다.
뭐 저런 O들이 있느냐며 질타하는 것을 넘어 기가 막혀 웃던 어제를 반성한다.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을 보고 드릴 말씀이 없다며 쓸쓸하게 돌아섰다는 분의 사진을 보고 손가락질하거나 웃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알만한 자식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랬느냐며 강 건너 불구경하기보다는 사랑과 정성을 다했을 텐데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식들에 대한 고뇌와 함께 하는 어버이의 싸움 구경을 하는 것이 더 처절했다.
아이들인지 어른들인지 모른다.
어느 수준의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선악이나 호불호를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
그들이 사악하여 작심하고 그런 일들을 저질렀다면 잡아다가 곤장이라고 실컷 쳐야 하겠지만 그렇게는 안 보인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도 모르고 꼭지 덜 떨어진 모습으로 그러는 것을 두고 느그 아버지 뭐 하시느냐고 닦달할 것은 아니다.
구경거리에 노땡큐다.
역병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잊게 해주는 진짜 코미디라면 모르겠다.
그게 아니고 누구한테도 보라고 권장할 수 없는 시사 패러디 같은 공갈 코미디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사절한다.
불구경이나 싸움 구경은 안 시켜주길 희망한다.
제미나는 것은 잠시이고 깊은 시름에 속 졸이는 것은 길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다르지 않다.
구경거리를 만들어준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가 구경거리가 되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출전은 했지만 어디로 뛰는지도 모르고 주마가편(走馬加鞭)하는 동네나 출전도 못 하고 내우외환에 허덕이며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동네나 싸잡아 고하노니 이제 구경거리는 제공해주지 않아도 되니 자신들부터 충그리는 것이 좋겠다 속삭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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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