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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by Aphraates 2022. 1. 2.

절은 자주 할수록 좋다.

문을 열고 들어가다 마주쳐도, 볼일을 보러 가다가 부딪혀도, 길을 가다가 만나도,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을 따라가서도, 조용히 하라는데 나오는 큰소리도, 가만히 누워 있어도 인사를 하는 것은 점수를 따면 땄지 잃지는 않을 것이다.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절을 싫어할 수는 없다.

겉으로는 안 그런 것 같아도 속으로는 그렇다.

겉으로는 갈 길 바쁜데 왜 그렇게 인사를 한다고 쫓아오는 것인지 제발 적당히 좀 하라고 핀잔을 하는 사람도 속으로는 갸륵하다고 칭찬을 하면 했지 성가시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절을 하겠다는 호의를 무시하고 절을 안 받는 것은 인격과 품성이 의심되는 사람이니 가까이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절은 자연스럽게 품격과 격조가 묻어나면 더 좋을 것이다.

사랑하고, 감사하고, 희망적이고, 진정한 절이면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한테 인사하듯이 안녕하슈한다거나, 인사를 받든 안 받든 상관없이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식으로 아침 잡수셨어요한다거나, 곤궁한 처지가 되어 칼자루를 쥔 사람한테 애원하듯이 읊조리는 식으로 헤아려주십시오한다거나, 언제 봤고 언제 다시 볼 것도 아닌데 서로 아는 척 할 것 없다는 식으로 잘 가시오한다거나, 맘에도 없이 억지 춘향으로 감사합니다한다거나,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잘 부탁드립니다한다거나,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으로 죄송합니다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절을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고 창피한 일로서 차라리 안 하니만 못 할 수도 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로 곤경에 처했었다.

간절하게 부탁을 했지만 잘 안 됐다.

불법적이거나 부도덕한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다 공감하는 것이어서 통상적으로 처리해줘도 될 일을 안 해줬다.

모종의 경로를 통하여 설명하고 로비를 벌였지만 허사였다.

그 관문만 통과하며 일이 잘 풀릴 텐데 막혔다.

칼자루를 쥔 관계자가 자기가 판단할 때는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거부했다.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몸 닳다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서 가능한 쪽으로 담판을 지으려고 관계자를 찾아갔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앉아있는 관계자를 향하여 턱 소리가 날 정도로 무릎을 꿇고 큰절하였다.

상대방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고개를 숙인 채로 할 말을 했다.

제가 지금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으니 선처 좀 해달라고 조아렸다.

 

그러나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차라리 은진미륵에 소리 지르는 편이 나을 정도로 단호히 거부하였다.

냉랭한 표정은 좀 누그러졌으나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 했다.

한 발 더 나갔다.

오히려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식이었다.

무릎 꿇고 앉아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면서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하는 내 심정은 더 안타깝다면서 제발 나 좀 한 번 봐달라고 되치기하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으로 포기하고 말았다.

그 과정과 결과에서 큰 손해를 봤고,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허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법이 뭐 잘못됐나 하고 주변의 조언도 들어보면서 그간의 과정을 되돌아보기도 하였다.

얼마든지 재량권을 발휘하여서 해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서운하고 괘씸하기도 하였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절에서 넙죽 절하는 사진이 눈길을 끈다.

열 님이 열절(烈節)하게 절하는 사진이다.

그 사진을 보니 거의 반세기가 다 돼 가는 1980년대 초의 본인 모습이 소환되었다.

워낙 다급했는가보다 라는 기사 소제목도 눈에 들어왔다.

답답하고 애절했던 그 때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그때는 그랬었지하는 탄식이 나왔다.

 

연초이던가 구랍이던가에 실린 사진이다.

보기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호의적일 수도 있고, 악의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송구영신 인사였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진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안 어울리고, 낯설어 보인다.

안 돼 보이기도 했고,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예절로 변방을 칠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정곡을 찔렀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

예의 기본이다.

일부에서는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다르게 해석하는 예도 있긴 하다.

그러나 산 자에게는 존경을, 죽은 자에게는 명복을 표하는 심신(心身)의 절을 그리 어렵게 만들 것은 아니다.

 

.

하고 받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이런 절이 있다.

겸손하고 공손한 아름다운 절이다.

이런 절은 효과적이고 감동적이다.

본인은 생각하거나 알지도 못했는데 받는 절이 그렇고, 마누라가 이쁘면 처가 기둥에 대고 하는 절이 그렇고, 허례허식이 아닌 소박 하고 진정성 있는 절이 그렇다.

 

그런 절도 있다.

교만하고 오만한 아름답지 않은 절이다.

그런 절은 효과가 작고 감흥이 미약하다.

간절하지 않아 보이거나, 마지못해야 등 떠밀려 하거나, 옆구리 찔러 받는 절이 그렇다.

 

구차하고 근근한 절은 다 가라.

여기 큰 절이 있다.

 

내일은 남다른 섣달 초하루다.

그 날인지도 모르고 여러 인사의 절을 받았다.

고마운 절이다.

옆지기와 윗전과 아랫전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절을 하였다.

절에 절로 응답하는 것은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용수철과 같다.

죄송스럽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하면서 구만 아버지와 갓난 엄니께 사랑과 감사의 절을 올리면서 저승과 이승의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라고 당신께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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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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