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대.
정릉 학교라 부르기도 했다.
북악터널 입구 정릉동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명문대와 구분하는 차원의 호칭이기도 했다.
근근하게 주경야독하던 미당 선생이 소싯적에 학교 문을 두드리러 한 적이 있다.
전 학년 장학금을 바라보고 입학하려고 한 것이다.
입학은 불발됐다.
장학생 선발 조건이 맞지 않았다.
실력이 달려 자신이 없으면 대신에 행운이 따라줘야 하는데 기대하기 어려웠다.
결국은 포기하고 뚝섬의 화양동 학교에 갔다.
거기에서 사학과 상위권으로 합격은 하였으니 장학생은 안 돼 입학을 포기하고 한남동 학교로 갔다.
거기서도 장학생은 못 됐다.
우수 학생으로 분류되어 입학은 했으나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K 대는 원래 해공 신익희 박사가 설립했단다.
미당 선생이 그 학교를 찾을 때는 이미 다른 데로 넘어간 때였다.
훗날 5.16 주도 세력이 주도한 민주공화당의 주역으로 군사 정권 실세의 한 사람이 된 김(金) 회장님이 인수하여 그의 아드님으로 이어지는 SS그룹 재단에 속해 있었다.
조그마한 야간학교에서 단과 대학을 거쳐 종합대학교로 승격하여 확장과 발전을 거듭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O류 S, O류 K&Y, O류 S&S&외 모모, O류 기타로 구분되던 시절인데 아마 K 대는 후순위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K 대 위상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대학이 양적으로 팽창하던 시절을 지나 수축하는 시점에서 매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만도 K 대가 여럿이니 있으니 구별을 잘해야겠다.
K 대가 학교 내외적으로 코너에 몰렸다.
머리 아프게 생겼다.
모종의 건을 계속 미루면서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가 막판에 출구를 찾아 나섰는데 그 길 역시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초지종과 진위여부를 자세히 밝힐 처지도 아니어서 적절한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크게 부적절하다고 볼 수도 없다는 통역이 필요한 언급을 할 정도로 곤란하게 됐다.
K 대도 심순애가 됐다.
이수일이냐 김중배냐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어느 편을 손들어주더라도 험로가 될 것이 뻔하여서 더욱더 운신의 폭이 좁고 할 말이 없게 됐다.
정치인은 자기 부고만 빼면 언론에 많이 나올수록 좋다고 했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인 학교나 조직원은 그게 아니다.
불명예스러운 일로 언론에 회자하면 존재 자체가 부인당한다.
O 밟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O개들이 O통 학교에서 스스로 O물 뒤집어쓰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만은 O파편 맞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며 발을 동동 구르며 분노하는 것을 어찌 해결하고 정리·정돈할지 답이 안 보인다니 성질나는 사람들 많게 생겼다.
각설하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반성과 용서와 화합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과거는 흘러갔다”나 “과거를 묻지 마세요” 라는 노래도 들어가면서 지난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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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