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이다.
계산으로나 예상으로나 도저히 못 할 것 같은데 하면 된다.
회의가 참 많기도 하다.
그만큼 현안이 많다는 것이고, 해야 할 일이 많고, 관심을 기울이고 열정적으로 처리할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회의 한 번 하면 지시받아 처리해야 할 것이 여러 짐이고, 지시하고 지도해야 할 것이 여러 짐이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신버전과 구버전이 뒤섞여 오간다.
우선 기가 질린다.
또 실수도 한다.
우물가에 가서 숭늉 찾는 예도 있고, 가마솥 밥집에 가서 냉수 찾는 예도 있다.
첫 경험은 아니고 늘 하던 일이다.
그런데도 워낙 많은 것들이 급박하게 돌아가니 좌충우돌에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쪽에서는 강한 발길로 밀어붙이고, 한쪽에서는 걸음아 나 살리라 하고 내뺀다.
그러나 부정하거나 거부하진 않는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몰아치는 폭풍우에 잠시 기절하여 전후좌우를 가리지 못하며 좌고우면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런 걸 갖고 왜 그렇게 몸과 맘고생을 했나 하는 웃음이 나오는 여유를 갖게 된다.
어제는 그놈의 틈새시장 한번 걸쭉했다.
이른 아침에 식음을 전폐하고 대학병원으로 가 진단검사를 받았다.
진료 시간이 안 돼 간호사는 물론이고 환자 한 사람 안 보이는 진료실 앞에서 기다려 소화기 내과 진료를 받고 난 다음에 신장내과로 가 진료받았다.
기왕 절주를 한 김에 다음에 오실 때는 한 30% 줄이고 오시는 게 좋겠다는 젊은 소화기 내과 주치의 선생님 말씀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그러겠다 대답했다.
현재 상태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니 지금처럼 잘 관리하시라며 응원해주시는 초로의 신장내과 주치의 선생님께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처방전은 데보라가 동네 약국으로 가 처리했는데 전체 약제비가 00만 원이고 본인 부담도 그이 1/4이 넘어 약사님도 놀라고 데 보라도 놀랐단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혼잡한 주차 문제 등으로 더딜 거 같아 택시를 타고 변동 회사 회의장으로 갔다.
시간 여유가 좀 있어 예전 용전동에서 함께 근무하던 후배 동료 YB들을 만나볼까 하고 사무실을 돌아봤지만 후배님들도 말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일이 바빠서 그런지 출장 중이거나 부재중이어서 우연히 마주친 다른 후배님들과 이게 얼마 만이냐는 반가운 인사를 나눈 정도였다.
1시간여의 회의 시간에는 많은 건이 논의되고 토의되었다.
여유있이 하자면 온종일 해도 모자랄 것 같았지만 속도전이 필요한지라 빠르게 진행 및 종료하고는 인근 추어탕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문을 닫은 집이 많고, 장사 안된다고 걱정인 집이 많지만 그 집은 홀과 방이 손님들로 가득하여 문전성시였고, 대기표를 받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점심 후에 커피숍에 들어가 공식 석상에서 하지 못한 것들을 토의하며 정보를 교환했다.
서류와 책을 무겁고 들고 택시를 탄 후에 바로 데보라한테 전화했다.
데보라도 대전 집 정리, 요셉 형제님 장례 미사 참례, 갈마 성당 수녀원 인사, 남원 갈 준비, 로마나 수녀님 방문, 이번 주 큰형님 생신연 준비 등등으로 바쁜 일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바깥양반 공무가 우선이기 때문에 협조를 받고 해야 할 상황이었다.
바로 검사장으로 갈 테니 키를 갖고 내려오라면서 처방전은 당신이 처리해 달라고 일렀다.
향촌 아파트 현관 앞에서 키와 처방전을 교환하면서 오후 대전 일정을 이야기했다.
월평동 자동차 검사장에 차를 입고시키고는 남원 현장의 감리단과 시공사로 카톡을 날리고 전화했다.
회의 결과를 간략하게 공유하면서 각자 단계별로 처리해야 할 일을 당부하는데 맞는지 틀리는지는 후에 다시 봐야겠지만 머리가 팡팡 돌아가고 말도 술술 잘 나왔다.
그 와중에 소맥 폭탄 생각이 나서 의향 타진을 했는데 여간해서는 마다하지 않는 대원들이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며 난감해했다.
서로가 미안하고 아쉽지만 사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지라 다음에 편안한 맘으로 작전 한 번 펼치자며 후일을 약속했다.
목동 수녀원으로 갔다.
진주 공군교육사령부로 부임하시는 수녀님께 건강 인사를 드리며 차 안에서 오순도순 삼자 데이트했다.
수녀님도 준비를 하셔야 해서 오래 함께 할 수는 없었다.
공방을 올라가 수녀님께서 조각하신 커다란 성화 목판 조각 작품 2개를 기억의 선물로 받았다.
그만한 소질과 손재주가 있으니까 하셨겠지만 어떻게 그렇게 조각 작품을 낼 수 있는 것인지 수녀님이 하셨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남원과 진주는 그리 멀지 않으니 안정되는 대로 따스하고 아름다운 한려수도에서 만나자며 작별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이메일을 열어봤다.
거기에도 꼭 처리해야 할 일들로 함에 가득히 쌓여있었다.
일일이 열어보며 우선순위를 정하여 감리단 전체 또는 개인별로 전달하고는 제목별로 내용을 살펴봤다.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자체 또는 합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안심이 됐다.
하루의 틈새시장은 여전히 북새통이었다.
서울 친구의 안부 인사, 예산 형수님과의 토요일 행사 예약, 대전 지인들과의 전화 나눔, 베란다에 수북이 쌓인 종이 상자 정리, 남원으로 갖고 내려갈 문사와 책자 챙기기......, 눈코 뜰 새 없다고 엄살을 부릴 만도 했는데 주방에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데보라도 비슷했다.
낮의 일을 일단 마무리하고 나니 출출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그런 걸 보니 많이 움직이고 생각하다 보니 쑥 내려간 것 같았다.
막히면 탈이지만 뚫렸으니 다행이다.
토실토실한 밥에 김치찌개, 백김치, 김, 남원 나물, 통영 멸치를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니 노곤했다.
숟가락 놓자마자 잠들었다는 옛사람들을 그리며 가물가물하다 보니 잠이 들어 깬 시간이 자정 전이었다.
간단하게 새벽밥을 먹고 5시면 출발해야 하니 더 자야 할 텐데 그거는 뜻대로 안 돼 틈새 사장을 잘 활용하며 동분서주한 하루를 복기하면서 글을 쓰노라니 그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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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